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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er DG

인큐베이션

글쓴이: 이대근 (ㄷㄱ)


누구나 봤음직한 과학상식책의 한 토막:
 
"가을 하늘은 왜 높아 보일까요?"
 
 
내 나이 일곱에 저 상식을 접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난 가을 하늘이 높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물론 저 책을 통해 저 "상식"을 접함으로써
내 사고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의심할 순 없다.
 
하지만 저 책을 통해 내게 떠먹여진
대기의 분진, 태양빛의 산란... 따위보다도 훨씬 비중있는 정보는
"가을하늘은 높다" 라는 심상이었던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차피 길어야 십년 안에 다 배울 상식이라면
그 나이 또래들보다 겨우 몇년 빨리 "언젠가는 배울" 상식 한 줄 미리 외우는 것보단
'가을하늘은 높다' 라는 심상을 알게 하는 것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가을하늘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자란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 "그런데 가을하늘은 왜 높은거지?"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면
그때 비로소 "가을하늘이 왜 높은지"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아이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초의 지식으로부터
한단계 도약하기 위한 "자발적인 호기심" 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
그러한 기다림, 또는 기다리는 시간을 인큐베이션이라 한다.
 
인큐베이션이란 어떻게 보면 기약없는 것이라
자발적인 호기심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단
미리 모든 정보를 주입해서 호기심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로 탄생한 "영재" 가 우리들 아닐까.
 
기본적인 심상의 결핍.
 
 
세상은 과학상식책보다 문학책을 더 필요로 한다.
예비 과학영재들에게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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