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ilosopher DG

경영자의 정당, 정당의 경영자

Author : Daeguen Lee

(Any action violating either CCL policy or copyright laws is strictly prohibited)




정치권의 거듭된 러브콜에도 정계진출에는 선을 긋던 안철수 교수가 처음 정치에의 뜻을 내비친 건 2010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였다. 이유인즉 "한 사람의 국회의원은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서울시장은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했다. 그 연장선에서 안철수 교수는 2012년 총선에 나서지 않고 곧바로 그해 말의 대선으로 직행했고, 한때 대통령직에 누구보다 근접해 보여지기까지 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대통령은 일개 국회의원, 서울시장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 사람의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있는 그이기에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던 생각만큼은 바뀐 것이 확실하나 어쨌든 정치에 임하는 그의 자세가 "세상을 바꾸는 것" 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믿자면, 그 연장선에서 대통령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또한 아님은 분명하다. 어쩌면 제1야당의 대표로써도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최근 일련의 그의 행보는 선거에서의 승패에 이미 초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당이 이토록 기괴한 행태(지난 지방선거, 다가오는 보궐선거 과정에서의 뻘짓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를 보이도록 방관할 리가 없다.


지방선거에 임하며 안철수 당시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은 독자창당 계획을 전격적으로 철회, 당시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양측 통합의 대외적인 고리는 기초공천 폐지, 대내적인 고리는 신당 내 양측 지분을 50대 50으로 한다는 민주당측의 파격적인 양보에 있었다. 통합 과정에서 이 "50대 50" 조항에 대한 양측의 온도 차가 꽤나 자주 노출된 바 주로 민주당측은 이를 통합에 임하는 마음가짐 정도로 해석한 반면 안철수측은 말단 당직에 이르기까지의 철저한 등분할의 원칙쯤으로 여겨 왔던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통합 신당의 지도부를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2인을 포함하여 양측 동수로 구성하고 시/도당위원장 역시 양측 각 1인의 공동위원장 체제로 구성하는 것으로 미봉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다. 시기상 총선과 총선 사이 한복판에 선 출범 당시로서는, 기업에 비유하자면 인수합병을 통해 이사진을 새로 구성했으되 당의 주주격인 당협위원장의 인적 구성을 바꿀 수는 없었고 126대 2라는 현역 국회의원 수가 의미하듯 양측의 지분율은 50대 50이 되려야 될 수 없었다. 적어도 당시로써는. 뒤집어 얘기하자면 안철수측의 지분 확보 기도는 아직 더 많은 장을 남겨두고 있다는 뜻도 된다.


여야 공히 정당의 근간은 과거 지구당이라 불리던 당원협의회에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하나씩 구성되는 당원협의회는 가장 최근의 제19대 총선에 기준하여 정당별로 246개씩이 존재하며, 각 정당의 당내 의결권 비율의 바로미터가 된다. 당원협의회가 곧 국회의원 선거구를 의미하는 정치현실상 해당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이 자당의 당협위원장을 겸한다. 문제는 당협 내에 현역 국회의원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게 된 경우인데, 마침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격렬한 잡음이 일었던 공천 모두가 차기 당협위원장직의 향배에 직결되어 있었단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큰 틀에서 구 민주당계 인사가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원외당협위원장이었던 곳에 안철수측 인사를 내리꽂으며 엄청난 분란이 일어났고, 적어도 이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상당한 의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극심한 부작용이 발생해 현재진행 중에 있다. 극단적으로 상상하자면 안철수 대표는 선거의 승패에 상관없이 246개의 당원협의회 중 50%인 123곳의 당협위원장이 자파 인사들로 채워질 때까지 이러한 뚝심을 거두지 않을 것도 같다.

 

정치적으로 몹시 해괴한 이 행태는, 그러나 기업에 비유하면, 그리고 승자독식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면 의외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전략이기도 하다. 업계 1위 삼성전자가 될 수는 없을지언정, 작은 회사가 업계 2위 회사와 합병하여 확고한 2위의 기득권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좋은 것이니까. 적어도 업계의 상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능란한 경영수완으로까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수권에서는 멀어질지언정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제1야당으로써의 지위를 위협할 어떤 세력도 없는, 말하자면 독점적 2위의 기득권을 누리는 당사자이며 차기 총선에서 몇 석(혹은 몇십 석)을 잃더라도 그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이 없다. 경영자로써는 자신의 몫을 희생하면서까지 '업계 1위'를 달성하는 것보다 견실한 2위의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안철수 대표의 행보가 이와 같은 계산에서 나온 게 아닌지 진심으로 의문스러운 시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구 민주당 계열로써는 최대의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