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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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헌법재판소가 이틀 뒤인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헌법재판소가 기어이 (대)법원에 대한 우위를 선언하고야 말았다는 것과 판결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날 것이냐는 의문,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나든 피할 수 없을 거센 후폭풍. 전자가 갖는 의미를 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오랜 갈등관계에 비춰 보는 한편, 후자를 국회의원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라는 정치 이슈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를 중심으로 서술해 보고자 한다. 부디 헌법재판소 선고가 나오기 전에 이 글이 완료되어 뒷북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글에 앞서 미리 고백할 것이 있다. 이 글(특히 전 문단에 서술한 두 주제 중 전자에 대하여)의 논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사실상 선수를 친 지금의 상황논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만약, 대법원이 금명간, 올 한해 동안 신속히 심리를 진행해 온 결과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 선고에 앞서 내란음모 사건의 종심 선고를 내리게 된 상황이었다면 정확히 지금부터 펼칠 논리와 반대로 글을 썼을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이후 본문에서 언급할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양 기관의 주도권 다툼에 양쪽 논리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글에서는 다소 법원의 논리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데, 헌법재판소의 편을 드는 논리는 주로 운용상의 문제(사법부가 헌법재판기관을 겸하는 경우 사법심사에 소극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등)를 짚는 반면 법원의 편을 드는 논리는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상의 문제(심급제의 형해화, 종심기관의 이원화 등)를 짚고 있기 때문이다.



1. 


다른 무엇에 앞서 헌법재판소가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에 임하게 된 계기를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정보원은 다년간에 걸친 수사 끝에 현직 국회의원인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수장으로 하는 'RO' 라는 조직(이 글에서는 '이석기 의원 집단'으로 칭한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를 전복하고 북한에 합세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꾀할 것을 모의했다는 수사결과를 공표했다. 이어 검찰의 보강수사를 거쳐 이석기 의원 집단이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무너뜨릴 것을 공모했다'는 혐의는 형법상 내란음모의 죄로, '북한에 합세하려 했다'는 혐의는 동법 외환죄의 하나인 '여적죄'로 각각 기소되어 올 한해 숨가쁘게 1, 2심을 거쳐 드디어 내일이면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될 예정이다. 한편 이것과 불가분의 한 묶음으로 정부는 이석기 의원 집단이 암약해 오던 통합진보당 전체를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선언하며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헌법재판소가 맡게 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과 대법원에 계류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죄 재판은 서로 재귀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이석기 의원 집단이 최종적으로 무죄에 가까운 판결을 얻어낸다면 필연적으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가 힘을 잃을 것이고, 반대로 유죄가 입증된다면 정부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전체의 반/합민주성을 인정하는지 여부는 대법원이 내란음모죄를 재판함에 있어서 상당한 참고가 될법 하다. 게다가 하필 내란음모 혐의에 관하여 1, 2심의 판결은 서로 엇갈려 있다.


이런 상황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 앞서 -게다가 하필 대법원이 심리를 개시하기 단 하루 전 언론에 공표하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건을 선고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그간 맞물린 두 사건의 주심기관으로써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서로의 눈치를 보던 형국을 헌법재판소가 선제 공격으로 과감히 깬 것이다. 이는 정당해산심판을 심리함에 있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단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선언일 뿐 아니라 오히려 대법원을 필두로 한 '법원' 전체를 헌법재판소의 논리 아래 가두려는 의지마저 엿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선수를 친 이상,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결하든 대법원이 이와 반대되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고한 후 대법원이 뒤늦게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든지. 그렇다면 과연 전후의 상황논리에 재판 자체가 영향을 받는 이러한 상황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이를 논하려면 우선 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해묵은 갈등구조를 들여다봐야만 한다. 헌법재판기관이 사법부와 일체였던 때(3공화국), 헌법재판기관의 작동이 법원의 트리거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때(1, 4, 5공화국)를 제외하고 보면 법원과 사실상 독립하여 운용되는 헌법재판기관을 우리가 갖게 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달리 말해 다른 두 시기의 경우 헌법재판기관과 사법부의 갈등구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으로 사실 헌법재판소와 법원 사이의 갈등의 빈도(내지는 마찰의 강도)는 전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권능이 확대됨에 비례해 증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와 법원 간의 모호한 권능 분담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사법심사(judicial review)란 법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각급 법원이 모든 층위(level)의 법령에 대해 위헌성을 심사하고 대법원이 그 종심을 맡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현행 헌법상 법률을 제외한 각종 '령'의 위헌심사는 이와 같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직 법률만이 -구체적으로,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만이- 예외적인 대접을 받는 바, 각급 법원은 어떤 법률이 '위헌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사를 해 줄 것을 요청할 권한' 만을 갖는다. 최종적으로 해당 법률의 합/위헌성을 판단하는 것은 헌법에 의해 '법원의 제청에 의한(+ 헌법재판소법에 의해 법원을 거치지 않고도 제소할 수 있는 루트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고유한 권한으로 유보되어 있다.


기능을 집합관계로 그려 보자면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기 전혀 별개의 정의역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예외적으로 '단 몇 가지' 를 원소 삼는 집합이라면 그 여집합이 모두 법원의 몫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법원이 행정부가 법률의 위임으로 제정한 '령'을 뒤집기에는 충분한 정통성이 있지만 아무리 헌법조항을 지렛대 삼더라도 국민의 대표가 입법한 '법률'을 뒤집기에는 아무래도 민주적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자인이 선출된 두 정통성 -국회, 대통령- 의 지분을 반영한 별도의 위헌심사기관을 둔 까닭이다. 이는 곧 국회의, 그와 함께 동등한 3부를 구성하는 다른 두 부에 대한 상대적인 수장성(supremacy)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에 괜히 국회가 3부 중 가장 먼저 열거된 것이 아니다.) 다만 이와 별개로 헌법재판소에 대한 대중의 '기대권능' 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데에는 과거 독재권력의 시녀로 부역한 사법부의 과오가 한몫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법원(특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능 중 필연적으로 중첩되는 영역이 생기는데 대표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선고하는 위헌 결정의 형태를 들 수 있다. 법원은 헌법이 정한 헌법재판소의 권능을 엄격히 해석해 '법률 조문의 위헌 여부', 다시 말해 '위헌인가, 아닌가' 만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문이 입안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에 서 있다. 즉 '위헌성'의 스펙트럼에 관한 한 얼마든 복잡다단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례로 특정 법률 전부 또는 일부 조문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명백히 위헌 혹은 합헌이라고 판정되는 데에야 양 기관의 이견이 없겠으나 (그야 헌법이 정해 둔 역할 분담에 충실한 것이므로,) 특정 조문을 오롯이 실효(nullify)시키지 않고 존치시키되 '어떠한 맥락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한정위헌)', '어떠한 맥락으로 해석하는 한 합헌(=한정합헌)' 이라는 식의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문제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추상적인 해석 가능성에 대해 합/위헌성을 못박고자 하는 것이지만 법원은 법률조문이 살아 있는 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법원의 고유 권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인 법률 조문을 지우는 지우개 역할에 그치길 바라며, 지우개가 문지르고 지나간 법률에 근거한 판단은 바로 자신의 권한이라 여긴다. 반대로 헌법재판소는 헌법 해석에 관한 한 자신이 종심기관의 위상을 갖고 각급 법원 -대법원 포함- 이 이에 기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기저에 깔고, 지금의 헌법재판소의 이례적인 움직임이 결국 법원에 대한 확고한 우위 선언이라고 볼 때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편의상 통합진보당의 해산판결을 '유죄', 기각을 '무죄'로 한다.) : 1) 헌법재판소가 유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이 내란음모죄에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 2) 헌법재판소가 무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 3) 헌법재판소가 무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 4) 헌법재판소가 유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 앞의 두 경우 사회적인 (특히 사법적인) 파장은 최소화될 것이나 대법원은 실제로 그랬든, 그러지 않았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기속된 뉘앙스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한편 뒤의 두 경우는 상대적으로 더 복잡한데, 전자의 경우 최종적으로 '이석기 의원은 잘못했으나 통합진보당 전체의 잘못은 아니다' 로 정리될 수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 그야말로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설상가상 후폭풍의 낙진을 뒤집어쓸 곳은 헌법재판소보다는 대법원에 더 가까워 보이는 데에 대법원의 고민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선수는 신의 한 수였다 해도 좋을 것이다.



2.


한편 이 모든 일의 발단, 전개가 이석기 의원 집단의 내란 모의와 그 적발이었다면 절정은 모레 있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선고가 될 것이고 대단원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는 자연스레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돌아간다. 글쓴이는 열거된 사건들 중 '정당 해산'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이 글의 후반부를 채워 보고자 한다. 우선 사견을 밝혀 보자면 '만약 헌법재판소 판결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된다면?' 이라는 의문과 마주했을 때 떠오른 생각들은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 어떤 면에서는 다행스러운 일, 어떤 면에서는 우려스러운 일, 종합적으로는 우려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위의 전개과정 중 글쓴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 것은 '위기' 부분이었다. 내란음모 사건이 공개된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여론의 일관된 반응이 말해 주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여론은 인터넷 뉴스 포털에서 발췌한 이 한 댓글이 잘 함축하고 있다.


"종북정당 꺼져라."


사실 정부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통합진보당은 다음 선거들을 거치며 자연히 도태될 가능성이 컸다. 현행 정당법상 총선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그 득표율이 유효투표 총수의 2%에 미달하는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정당등록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 제도마저도 전적으로 -특히 소수정당에게- 공정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어서, 한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선호의 총합을 고르게 반영한 것이 아니라 단지 '1순위' 선호를 못 받은 순으로 도태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통합진보당을 고르게 좋아했으나 어쩔 수 없이 1순위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찍은 사람의 표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이렇듯 굳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한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선택 -정확히는 '국민의 선택' 이라고 해야 옳겠으나- 에 의한 소멸이 예정된 정당을 대상으로 정부가 호들갑 내지는 정치공학적 계산에 입각해 국론을 분열시키는 모양을 연출한 것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본질적으로 사상의 자유란 결국 우리, 혹은 사회의 다수가 싫어하는 생각을 할 자유라는 점에서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생각을 가질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는 볼테르의 말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이 대목에서, 많은 국민 -예를 들면 과반수-, -심지어 3분의 2이상- 이 반대하는 것일지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마침 38도선 이북에 대해 우리가 갖는 결정적인 우위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자유' 일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발단으로부터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조치를 되짚어 보면 오히려 특정한 컨셉으로의 사고 자체를 막겠다는 의지만이 보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이같은 제소가 가능했던 원인인 정당해산제 자체의 합민주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법기관에 정당을 해산할 권한을 부여한 본질은 다당제를 형성하는 민심, 즉 대중의 정치적 의사의 집합체로써의 민심이란 것에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으리라는 의심에 기초해 더 합리적인 누군가의 후견이 필요하다는 처방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본질이 위험한 까닭으로 최장집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보자면 "특정 영역이나 사안에서 전문성 내지 보다 많은 지식을 갖는다고 해서 이들 엘리트에 의한 통치가, 국민 다수의 결정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며 "과거 귀족주의의 현대적 변형이라 할 전문가주의 혹은 엘리트주의" 가 곧 "민주주의 체제 속으로 스멀스멀 힘을 확대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같은 책에서의 인용문을 마지막 문단 삼아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많은 법의 종사자들과 함께 재판관들은 스스로의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강조함에 있어서 자주 '법리' 라는 말을 사용한다. 법 그 자체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인 까닭에 법을 실천하는 기술적·절차적·형식적 측면에서 특별한 언어와 논리를 필요로 하며, 이 차원에서 법에 관한 이해나 해석을 둘러싼 이성적 사고와 판단 그리고 그와 관련된 논리를 법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법리라는 말은 절차적 차원의 전문지식의 의미를 넘어 실질적 내용을 갖는 어떤 근원적 원리라는 의미로 확대되곤 한다."


"법리는 민주주의의 규범으로부터 독립적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 상위에 있는 것으로 상정된다. 민주주의가 '법리' 의 관점에서 도출된 규범으로부터 일탈할 때 이를 계도할 수 있거나, 더 나아가 계도해야 하는 어떤 규범적 내용을 갖는 것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법리라는 이 말은 명시적으로는 정치를 비하하면서 암묵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범위를 축소시킴과 더불어, 파당적 정치를 초월하여 공익에 충실하고 이성적인 법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사회에 부과하는 것이다. 동시에 법리를 이해하는 법의 해석자로써 법 종사자 내지 법관들은 민주주의 밖에서 법리를 근거로 민주주의를 심판할 수 있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이는 앞에서 달이 비판했던 '후견주의' 적 발상 내지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법리' 의 의미가, 지난날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법의 권위주의적 이해 및 역할이 아닌 민주적인 규범과 가치 위에 확실히 기초하고 있는가를 물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규범과 가치의 충실한 해석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 (이상 "How Democratic Is The American Constitution?", by Robert Dahl, 한국어판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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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3일 보충 :

 

작년말,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선고에 앞서 적은 글 (주 : 위의 글) 에서 예상했던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가 높은 싱크로율로 현실화되었다. 헌재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대법원에서 내란음모 무죄를 판결한 것. 내란선동만이 유죄라는 대법원의 판결은 곧 이 모든 것이 이석기 개인의 일탈에 다름아니라는 것이자 정확히 헌재가 정당해산의 근거삼은 부분을 '실체 없음'이라 못박은 것이다. 헌재의 논리가 궁색해졌다.

 

이 사건 자체에 대한 감상을 떠나, 만약 조만간 개헌이 논의되기 시작한다면 헌재와 법원의 권한/기능 분장과 관련해서도 진지한 토의가 있길 바란다. 이번 같은 엇박자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헌재를 법원이 흡수하거나, 거꾸로 헌재-법원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 헌재 구성방식의 획기적인 변경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관 전원을 국회가 선출하도록 하거나 적어도 임기를 어마어마하게 늘려 적어도 비슷비슷한 한두 대통령의 임기를 거친 것만으로 어느 방향으로든 9:0, 8:1 같은 의견분포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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