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축소판


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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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당시 서울특별시장과 민주당 주도의 서울특별시의회는 무상급식의 시행에 관한 양당간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고, 이에 오세훈 시장이 전격적으로 주민투표를 제안해 그 달 24일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가 치러지게 되었다. 사실상 시장에 대한 신임투표격으로 치러진 투표에서 투표율이 20%대에 그쳐 개표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등 극심한 민심이반을 확인한 오세훈 시장은 곧바로 사퇴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달여 뒤인 10월 26일,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와 범야권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맞붙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당시 최근 몇달 이래 가장 큰 정치행사로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비교적 큰 표차로 박원순 후보가 당선을 확정지은 이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투표 당일 오전 여섯시부터 여덟시까지 두시간 동안 선관위 홈페이지가 해킹된 것.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지 않는 보궐선거일의 특성상 출근해야 할 직장, 등교해야 할 학교가 있는 직장인/학생들의 기대투표시각인 이때, 하필 투표소를 안내하는 메뉴가 다운된 것이다. 특히 불과 넉달 전 치러진 6.2 지방선거와 비교해 4분의 1가까운 투표소가 이동 또는 변경된 상황이라 미리 확인하지 않고 해당 시간대에 투표장을 찾은 이들을 중심으로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후 PD수첩에서 시뮬레이션한 결과 실제 이로 인한 투표율, 정당별 지지율에의 상당한 상관관계가 확인되었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선거과정상의 문제가 있었음을 공식 질의하며 선관위에 홈페이지 접속로그의 공개를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일단 공개를 거부했으며, 이후 공식적인 고발이 이어지고 검찰 수사가 개시되었다.


쟁점 자체가 워낙 기술적이기도 하거니와 기왕 야권의 승리로 귀결된 선거였기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건이 잊혀져가던 그해 겨울, 한나라당 당직자 몇몇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며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수사가 진행 중이었으나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홍준표 의원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견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사이 대표적인 친이명박계 인사이던 홍준표 대표는 떠밀리다시피 물러났고 이명박 정부와 대립하던 박근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어 한나라당을 장악했다. 아래는 그 기간 동안의 주요 헤드라인을 모아 본 것.




1. 선관위 디도스공격 파문 확산...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 사퇴
---> 홍준표 대표 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한 신호탄. 당시 대표적인 친박근혜계 인사이던 유승민 최고위원이 중립성향의 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과 동반 사퇴하며 홍준표 대표의 퇴진을 압박했다.


2. 홍준표 대표 기자회견 "9명 중 3명만 사퇴했을 뿐, 대표성에 문제 없어"
---> 한나라당 당헌상 당의 최고 의결기관인 '최고위원회'는 전당대회에서 선거하는 대표, 대표선거에서 2~4위 득표자로 구성하는 최고위원단(선출직 4명 + 임명직 2명), 의원총회에서 러닝메이트로 선출하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의 9인으로 구성된다. 최고위원 3인이 사퇴했으나 아직 6명이 남아 의사결정 및 당권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기자회견.


3. 홍준표 대표, 당혁신안 발표... 주도권 선점 노려
황우여/김장수/이주영, 최고위 불참... 최고위원회 취소

---> 위의 기자회견 다음날, 홍준표 대표는 자체 개혁안을 마련하는 등 대표직 수행에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개혁안을 추인받기 위해 소집한 최고위원회에서 예기치 못한 3인의 반란으로 최고위원회 의결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로써 지도부가 붕괴되었다. 당시 정치적 색채가 거의 없던 국방장관 출신 김장수 최고위원과 이주영 정책위의장의 반란 가담이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훗날 이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초대 국가안보실장과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된 것으로 보답받았다. 황우여 원내대표가 이후 친박근혜계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새누리당 초대 대표를 지내고 부총리로 영전한 것은 물론이다.


4. 이혜훈 "홍 대표는 결국 알아서 물러나게 될 것"
남경필 "당의 유일한 대안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답"
홍준표 대표 전격 사퇴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게 무의미해"
(박근혜 전 대표와 상의했냐는 질문에) "나는 한나라당 대표"
(향후 당 지도체제 관련) "당헌, 당규에 따르면 된다"

---> 이후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아직까지 임기가 남아 있던 홍준표 대표의 퇴진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 당헌상의 당권-대권 분리조항에 의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자는 대선 18개월 전까지 모든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이에 따르면 박근혜 의원은 당대표직 취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대선 출마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즉 홍준표 대표의 마지막 말은 박근혜 의원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의 표명이자 자신을 끌어내린 데 대한 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당권-대권 분리조항은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 도입되었는데, 이를 주도한 당시의 대표가 바로 박근혜 의원이었다...


5. 친박 '당권-대권 분리조항' 폐지 시도, 친이계 거센 반발
---> ...그런데 친박근혜계가 그 조항을 폐지하려 한다.


6. 황우여 원내대표 대표대행에 취임... '키' 쥐게 된 황우여
황우여 대표대행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 최고위 운영"
"당 후속제체를 가능한 한 빨리 박근혜 전 대표에게 넘기려 한다. 박 전 대표가 원하는 대로 해서 빨리 넘겨드려야 한다. 걸림돌이나 그런 것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나경원 최고위원 사퇴

---> 한편, 대표 유고시 원내대표가 직무를 대행토록 한 당헌에 의거하여 당시 원내대표이던 황우여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대행이 되었다. 취임 일성이 박근혜 의원에게 대표의 권한을 넘기겠다는 것이었으니 꽤 독특한 취임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나라당 당헌에 따르면 대표가 궐위되었을 때 그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이면 최고위원이 득표순으로 대표직을 승계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법적으로는 그때까지 사퇴하지 않고 남아 있던 나경원 최고위원이 대표직의 합법적 승계자였고, 황우여 대표대행이 지목한 '비대위 출범의 걸림돌' 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역시 그 직후 나경원 최고위원에 대한 친박근혜계의 전방위적인 압력이 있었고 이틀 뒤 나경원 최고위원은 사퇴했다.


7. 김학송 전국위의장 "전국위, 비대위 당헌당규 정비 추진"
여당 중진 "박근혜 중심 비대위에 전권 부여"
"박근혜 전권 행사토록 당헌 개정할 것"
윤상현 "박근혜 믿고 따르는게 순리, 등판에 조건 붙이지 말아야"
허태열 "박근혜 공천권 당연한 것"

---> 비대위의 합법적 출범을 막는 걸림돌이 나경원 최고위원이었다면 '박근혜 비대위'의 출범을 막는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당권-대권 분리조항인데, 한나라당의 당내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위원회에서 이 조항의 무력화를 꾀하게 된다. 이후 김학송 전국위의장은 불출석한 전국위원 200여명의 의결권을 대리 행사해 3분의 2이상 찬성이라는 당헌 의결정족수를 채웠는데, 훗날 법원에서 의결권 대리행사가 위법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당시의 결정을 소급해 무효화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또한 그 때는 이미 박근혜 위원장이 한나라당을 장악한 후였다. 한편 당시 친박근혜계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위와 같은 발언을 쏟아내며 박근혜 의원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곤 했다.


8. '여왕의 귀환'
---> 12월 15일 경향신문 타이틀.


9.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에 박근혜 추대... 당헌 개정안 만장일치 가결
---> 대선후보 출마자가 1년 6개월 전 모든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에서 비대위원장만 예외로 하는 당헌 개정이 확정되었다. 대통령의 중임을 제한하되 초대 대통령만 예외로 한 과거의 헌법개정이 떠오른 분 혹시 계신지. 양 케이스 모두 위인설법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10. 힘 잃은 여 '당권-대권분리' 당헌... 제왕시스템 복귀
---> 이로써 한나라당은 '박근혜 당' 이 되었다. 끝.





12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박근혜 의원과 친박근혜계 인사들은 군사작전하듯 일사불란하게 홍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합법적인 대표직 승계를 방해했으며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당의 헌법을 뜯어고쳐 권력분립을 폐지, 전권을 '박근혜' 1인의 수중에 쥐어 주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클리셰 대부분이 주역의 이름과 직위만 조금씩 달리한 채 재현된 것처럼 보였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더불어 평생을 두고 이러한 방식의 권력획득에 익숙해져 있을 사람의 인식이란 건 어떤 것일지 새삼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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