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영혼

글쓴이: 이대근 (ㄷㄱ)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그녀의 집권기간 동안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펼쳐졌고, 이러한 노력은 특히 유럽 다른 국가에 뒤처졌던 농정산업의 개량에 집중되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을 동원해 축산업의 채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방편을 개발해 냈고 그 연구의 결실은 가축의 먹이로서 일반에 상용화되었다.
축산업자들은 그들의 가축을 비약적으로 빨리, 크게 성장시키는 '최신 과학기술의 결실'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눈에 보이는 채산성의 향상으로 신기술의 효과가 입증된 이상, 정부로써는 이 기술의 이전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 실상 축산 농가들이 먼저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의 도입을 원했다.
당장의 이익을 좇는 축산업자와 당장의 고효율성을 추구하는 정부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결실을 검증할 최소한의 시간마저 갖지 못한 채 이 신기술은 퍼졌다. 이 신기술의 진가는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80년대 후반 드러났다.

1986년, 그 진가가 세상에 처음 드러났을 땐 아무도 그 실체를 몰랐지만, 그로부터 다시 십 년이 지난 1996년에는 모두가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은 초식동물인 반추동물(=소)의 발육을 촉진하기 위해 같은 종의 골육을 먹일 것을 제안했고, 인간이 신기술의 검증 의무를 미룬 사이 자연이 20년의 실험을 거쳐 이 신기술을 도입하면 안 될 이유를 증명해냈다.


과학자들은 이를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라 이름지었다. 우리는 이것을 '광우병'이라고 부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우병에 대한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실관계가 드러나기는커녕 점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가는 현실. 진실은 분명히 하나이겠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과학기술은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한가? 광우병은 전염병인가?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명제: 과학기술은 언제나 옳은가? 과학기술은 언제나 중립적인가?

분명 소를 육식동물로 둔갑시킨 기술도, 광우병을 밝혀낸 기술도, 오늘날 줄기세포를 만들고 유전자변형 옥수수를 생산해내는 기술도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이 분명하지만, 언제나 옳고 중립적이어야 마땅할 기술의 궤적은 되려 '옳음' 내지 '중립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당대의 driving force에 한술 더 뜨며 쫓아가는 모양이랄까. 이것이 영혼 없는 과학기술의 원초적인 한계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고 보니 과학기술의 원천이 되는 '직관'을 가진 인간의 원초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과연 자신이 살지 않을 후대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을까?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미래란 얼마나 광대하거나 협소한 것일까?

베드로의 열쇠쯤으로 떠받들어지는 줄기세포나, 그야말로 최신의 유전자적 치료법이란 기술들은 과연 수십 년 뒤에도 지금과 똑같은 평가를 받고 명맥을 이을까?
 

글쎄. 나도 여기부턴 더 할 말이 없다. 나도 인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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