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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er DG

양심의 무게

 

 

 

  ...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결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개인 차원에서든 국가 차원에서든 이유를 불문하고 일체의 살상을 거부하는 사상은 역사상 꾸준히 나타났으며, 비폭력, 불살생, 평화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평화에 대한 이상은 그 실현가능성 여부에 불구하고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하고 존중해온 것이다. 우리 헌법 역시 전문에서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을 선언하여 이러한 이념의 일단을 표현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왔고 국제기구들에서도 끊임없이 각종 결의와 결정을 통해 그 보호필요성을 확인해온 것은 이 문제가 인류 보편의 이상과 연계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중략)

 

  ...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납세 등 각종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함을 부정하지 않고, 집총병역의무는 도저히 이행할 수 없으나 그 대신 병역의무 못지않게 어려운 다른 봉사방법을 마련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이를 '양심적' 병역거부라 칭하는 것에 대하여 그렇다면 "군대에 간 사람은 비양심적이고 거부하는 사람은 양심적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여기서 양심적이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평가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이 그 자신의 거역할 수 없는 마음의 명령으로 인해 병역거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인 것이므로 국방의 의무의 신성함과,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정신과 노고를 평가절하 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중략)

 

  ... 특히 병역거부에 대한 종교와 신념을 가족들이 공유하고 있는 많은 경우 부자가 대를 이어 또는 형제들이 차례로 처벌받게 되고 이에 따라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더 큰 불행을 안겨준다. 아버지가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로 4년간의 수감생활을 한 이후 두 아들이 같은 이유로 수감생활을 하고 셋째 아들도 같은 이유로 처벌을 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네 형제가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차례로 2년 또는 1년 6개월의 징역형으로 처벌받은 경우도 있다. 실로 섬뜩하기까지 하는 이러한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형벌과 사회생활에서의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보존하려는 이들의 양심의 무게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혹 이들의 절실한 양심을 가볍게 치부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후략)

 

 

- 헌법재판소 판례 소수의견, 2004.08.26, [2002헌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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