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대근

연락처 : leedaeguen [at] 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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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제정당이 각자의 유불리에 의거해 창의적인 선거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종전 지방선거까지의 주된 논점이 비례대표 확대/축소, 중대선거구제 도입/소선거구제 환원 등의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되었다면 이번의 논의 단계에서는 지난 대선에서의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과 맞물려 확실히 더 큰 수준의 담론이 오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심지어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는 최근 모 강연회에서 아마도 독일의 그것과 유사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상전벽해 아닌가.

 

지방의원 선거제도개혁에 관한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자치구 지역에서의 기초의회 폐지/광역의원 증원 및 정당공천제 존치가 핵심이며 이에 대응하는 민주당의 대안은 기초의회 존치/기초의원 정당공천제 전면 폐지로, 여기서 정당공천제 폐지는 필연적으로 비례대표 의석의 소멸을 초래할 것이다. 이 틈새를 노린 안철수측의 개편안은 큰 틀에서 민주당안과 궤를 같이 하되 소수계층의 대표성 확보라는 비례대표제의 선효과를 약간 변형된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바로 '여성명부제'라는 제도가 그것으로, 이름으로 연상되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능한 구현 방법이 있겠으나 그들이 상정한 방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이쯤에서, 능동적인 언론 소비자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보다 나름대로 이상적이라 여기는 제도를 고안해 보기에 이르렀다. 우선 붙여 본 이름은 "정당표방 순위가변식 비례대표제". 모티브가 된 기성 제도들은 다음과 같다:

 

-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 순위가변식 정당명부제
- 정당 표방제
- 여성명부제

 

(순위)가변식 정당명부제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 현행 각급 비례대표 선거에 적용되는 방식을 (가변식과 대조되는 것으로) 순위고정식 정당명부제라 한다. 정당이 미리 고정된 순위의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를 제공하고, 득표비율에 따라 의석 수를 할당하면 해당 정당에 배정된 의석수에 달하기까지 명부상의 순위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반면 가변식 정당명부제에는 미리 정해진 순위가 없다. 즉 정당이 비례대표 명부를 제공하되, 유권자는 전통적인 정당투표 이외에 비례대표 명부상의 후보에 대해 또 한표를 행사하고 후자의 다득표순으로 비례대표 명부의 순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활자화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선거가 시행되는 권역은 기초자치단체를 단위로 가정했으며 (그보다 클 경우, 현행 한 시/군의 기초의원 수를 생각했을 때 선거구가 너무 커지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기초의회의 존속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기초의회를 폐지하는 경우라도 각 기초자치단체를 하나의 대선거구로 하여 광역의회를 구성할 때 적용할 수 있다.

 

1. 각 후보자는 자신이 "표방하는" 정당의 명부(이하 "정당명부"라 하자)에 기재된다. 여성인 후보자는 같은 정당의 여성명부에도 역시 기재된다.

 

2. 선거에서 각 정당이 득표한 비율에 근거해 전체 의석을 배분한다.

 

3. 2번에서 각 정당이 배분받은 의석 수(이하 "정당 의석수"라 하자)만큼 해당 정당의 정당명부에서 다득표순으로 당선자를 결정한다. 단, 다득표순으로 해당 정당 의석수까지의 순위 내에 있는 여성 후보자가 정당 의석수의 100분의 30에 미달할 때에는 그 수를 제한 순위까지의 정당명부 후보자 및 동 정당의 여성명부에서 다득표순으로 해당 정당 의석수까지의 순위 내에 있는 후보자가 당선자가 된다.

 

3번에서 "100분의 30"이라는 수치는 여성의원 쿼터로 임의로 설정해 본 것이다. 어쨌든 이런 방법을 통해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없앰과 동시에 (후보자들이 지지정당을 "표방"하는 것이므로 당 차원의 개입이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사라질 것이다) 정당정치의 기반은 오히려 강화할 수 있고(∵ 정당이 배정받는 의석수가 득표율에 비례), 소수계층의 의회 진출을 보장하면서 (여성명부란 용어를 썼지만 충분히 장애인, 다문화가정, 사회적 소수자 등 소수계층 일반을 대변할만한 용어로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고정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약점인 개별 당선자의 취약한 대표성을 가변명부제로 보완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열거한 것만 무려 1석 4조! 심지어 적어도 정당 차원에서는 개별 지역구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던 것을 (궁극적으로, 거국적인 정당득표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고공전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선거비용이 대폭 절감되는 효과까지 점쳐진다.

 

물론 후보가 난립할 경우 각 후보가 지출할 선거비용의 총액이 늘어난다는 점, 그리고 난립된 후보 사이에서의 득표율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투표제도'의 개혁까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 과제로 남는다. 예컨대 현행 단기비이양식(= 한 표에 한 사람을 기표하고 사표가 다른 후보에게 이양되지 않는)보다는 제한적인 수를 연기하는 연기비이양식 내지는 순위에 따라 선호가 이양되는 선호투표제가 이 제도와 더 잘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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