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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er DG

고대로부터의 교훈 : 두 공화정 이야기

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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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현 중도좌파 내각 주도의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안이 확정되었다. 국내 주요 언론은 이를 소개하며 "1위 득표 정당에 의석의 과반수를 자동 할당하는" 제도라 옮기며 이로 인해 보수 야권이 반발하고 있다고 옮겼지만 사실 핵심은 그게 아니다. 최다득표 정당에 과반 의석을 할당한 뒤 나머지를 비례배분하는 큰 틀은 이미 10년 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그 단서조항에 있다. 1위 정당의 득표율이 40%에 미달할 경우 1/2위 정당에 대해 결선투표를 실시해 과반 의석을 받을 정당을 결정한다는 규정이다.

 

십년 전 만들어진 현행 선거법을 요약하자면 결선투표 없이 결선투표의 효과를 내는 제도라 할 수 있다. 당시 개혁을 주도한 정부는 우파당 소속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수반으로 두고 있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행으로 유명한 이 총리는 이탈리아 주요 언론을 장악한 언론재벌 출신이었다. 아마도 그것과 선순환을 이룬 것이겠지만 그는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는 못할지언정 절대로 깨지지 않는 30%선의 지지율을 늘 유지했으며, 덕분에 30%+a 가량의 득표율로 과반에는 못 미칠지언정 늘 원내 1당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정상적인' 선거제도 하에서도 집권가능성이 꽤 높았던 그는 매번 다른 당과 연립하는 것조차 귀찮았는지 새로운 선거제도를 고안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2005년으로부터 지금까지 십년간 이어져 온 다음의 제도이다.

 

이탈리아의 국회는 상원과 하원의 양원으로 구성된다. 각 주와 해외영토를 단일선거구로 하여 중대선거구식으로 의원을 선출하는 상원은 315명의 정원을 가지며 전국을 단위로 거의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는 하원에는 630석의 의석이 있다. 630석 중 해외 각지의 국민들이 선출하는 '해외의석' 12석을 제외한 618석에 대해, 매 총선에서 각 정당이 차지한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식이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바로 여기에 전후(戰後)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정의 원인이 있다고 보고 강제로 '과반수를 생성하는' 제도를 고안해 냈다.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정당에 비례대표 618석의 55%인 340석을 몰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한 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깨지지 않는 굳은 30%의 지지율로 두 번을 더 집권한 바 있다. 특히 이 제도는 하원뿐 아니라 상원에서도 베를루스코니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여느 나라에서 베를루스코니류의 정파가 그렇듯 그는 인구밀도와 교육수준과 소득이 낮은 지방(이하 '3저 지방')을 중심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인구비례의 하원과 달리 각 주별로 의원을 선출하는 상원에서 이들 '3저 지방'의 유권자들은 흔히 과대평가되기 마련이다. 상원과 하원이 동등하게 총리를 지명할 권한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각기 총리를 불신임할 권한이 있는 이탈리아 국회제도의 특성을 등에 업고,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당이 하원 과반수를 상실한 시기마저 상원에서의 사보타주를 통해 좌파 내각을 퇴진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권언유착 + 정경유착 + 우민(愚民)의 투표행태가 결합되어 그의 수명이 붙어 있는 한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의 집권은 엉뚱하게도 최근의 유럽 금융위기로 끝이 났다. 좌우파 모두 정권획득이 불가능할 만큼 민심을 잃어 정상적인 정부 출범이 어려웠던 상황논리와 대조적으로, 당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정부의 리더십이 필요해졌기에, 급기야 상징적인 국가수반인 대통령 주도로 저명한 경제학자를 총리에 '모셔 와' 거국내각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그 끝에 전임자로부터 총리직을 바통터치한 마테오 렌치 현 총리가 금번 선거법 개혁을 밀어붙인 것이다. 문안상으로는 '1위 당이 40%를 득표하지 못하면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한 문장을 추가한 것이지만 이것으로 이탈리아의 정치지형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했으나 깨지지 않는 30% 지지율을 가진 베를루스코니당의 집권 가능성이 거의 봉쇄된 것은 물론, 그 반대급부로 지지율 총합은 높되 각개집권이 거의 불가능했던 군소 야권의 공동집권이 거의 제도적인 레벨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더불어 그간 1위 정당의 득표율이 몇%이건 상관없이 55%의 의석을 할당함으로써 발생한 득표율-의석률 불비례 역시 상당 부분 해결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결선투표의 도입으로 인해 국민 다수가 원하는 정치세력이 보다 명확히 드러나게 되고, 그러한 세력에 합당한 의석을 배분하게 되었단 점에서 (대개 양자 구도 하에서 5x : 4y의 결과가 됨을 고려할 때 5x%를 득표한 세력에 안정적인 55%를 할당하는 정도의 '사소한' 불비례는 그러한 제도가 없을 때 발생할 정치불안정과 비교해 훨씬 작은 악일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의 의원내각제보다도 참신한 제도라고까지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우리 언론사들이 전한 소식은 이탈리아 선거제도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단 것. 제도적 게리멘더링을 획책한 것이 핵심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최대한 민의가 투영되는 방향으로 매 선거마다 자동 추인되게끔 보완한 것인데 말이다. 기사만 보면 이탈리아의 현 정부가 오로지 당리당략을 위해 마치 대단히 불비례적인 제도를 도입한 '민주주의의 원흉' 정도쯤으로 비쳐지게 생겼다. 이것 하나를 '결선투표제' 도입에 반대하는 우리나라 여권의 기류가 투영된 보도였다고까지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리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내각제 국가라는 사실은 과거 어느땐가 들어 알고 있었다. 알다시피 내각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그리 대단치 않다. 그렇기에 '그리스 대통령 선출 실패' 와 '그리스 주가 폭락'이 인과관계로 묶인 오늘의 뉴스가 더 흥미로웠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체 뭔 소리야?" 쯤 되었겠지만. 여튼 뉴스를 보고 급 궁금해져 그리스의 헌법을 잠시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이 나라는 굉장히, 뭐랄까, 개복치같은 국회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가 무산되어도 해산, 총리 선출에 실패해도 해산. 결국 오늘의 뉴스 역시 대통령 선출 실패 -> 주가 폭락이 인과의 본질이 아니라, 대통령 선출 실패 -> 국회 해산 -> EU의 긴축안에 반대하는 시리자의 집권가능성 상승 -> 주가 폭락이 본질이었던 셈이다.

 

그나저나 간단히 조문을 번역하며 느낀 점이라면 예상 가능한 모든 교착상황에 관해 굉장히 자세한 출구조항을 만들어 두었다는 느낌이다. 고대로부터 겪어온 오랜 공화정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국회가 허약한 것이 꼭 나빠 보이지만도 않는다. 어쨌든 선거를 자주 치른다는 것은 좀 더 잦은 주기로 민의가 국정에 반영될 통로가 열린다는 것이니. 어쩌면 이 나라야말로 공화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1. 대통령에 관한 조항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한다.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임기만료일로부터 1달 전까지 그 후임자의 선출을 위한 임시회의 집회를 공고하여야 한다. 단, 대통령의 사직, 사망, 파면으로 인해 그 선출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그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임시회의 집회를 공고한다.

 

대통령선거에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이상을 득표한 자를 당선자로 한다.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그로부터 5일이 경과한 후 2차 투표를 실시하고, 2차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재차 5일이 경과한 후 3차 투표를 실시하되 3차 투표에서 국회의원 재적 5분의 3이상을 득표한 자를 당선자로 한다. 3차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없으면 국회는 해산된다.

 

전항의 규정에 의해 국회가 해산된 경우, 그로 인한 국회의원총선거 후 최초로 소집된 국회에서 대통령선거를 속개하되 국회의원 재적 5분의 3이상을 득표한 자를 당선자로 한다.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그로부터 5일이 경과한 후 2차 투표를 실시하되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를 득표한 자를 당선자로 하고, 2차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득표순으로 상위 2인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실시하여 다수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

 

 

2. 내각에 관한 조항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고, 그의 제청으로 각료와 정부위원을 임면한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함에 있어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소속한 정당의 대표를 임명하여야 한다. 단, 소속 국회의원 수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인 정당이 없는 때에는 대통령은 소속 국회의원 수가 많은 순으로 정당의 대표자에 내각구성계획(programme)의 제출을 요청하고, 당해 정당의 대표자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내각구성계획을 제출하면 그를 총리로 임명한다. 정당의 대표자가 동 요청을 접수한 날로부터 3일 이내에 내각구성계획을 제출하지 아니한 때에는 대통령은 차순위 정당의 대표자에게 새로이 그와 같이 요청하여야 한다.

 

전항 단서의 규정에 의해 소속 국회의원 수가 많은 순으로 3개 정당의 대표자에 내각의 구성을 요청한 뒤에도 내각이 구성되지 아니한 때에는 대통령은 국회의원이 소속한 모든 정당의 대표자를 소집해 내각 구성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고 내각 구성을 중재한다. 중재에 실패한 때에는 대통령은 국회해산 및 국회의원 재선거를 전제로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과도내각의 구성을 제안할 수 있으며, 제안이 반려된 경우 최고행정법원장을 과도 총리에 임명하고 과도내각의 구성을 요청하여야 한다. 이 경우 국회는 해산된다.

 

전항 및 전2항의 규정을 시행함에 있어, 정당의 대표자가 없거나 국회의원이 아닐 때에는 당해 정당의 원내교섭단체에서 선출하는 자를 그 대표자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