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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er DG

무엇을 섬길 것인가

 

Author : Daeguen Lee

 

 

 

지난 1월 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날 검찰은 대통령 측근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를 종결지었고 이에 대해 여야는 대통령비서실의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운영위를 개최하여 현안을 질의하기로, 실로 모처럼 합의하였다. 비서실장을 필두로 대부분의 수석비서관이 운영위에 출석했으나 민정수석만이 출석하지 않았다. 비서실 고위직이 모두 자리를 비웠으니 비상 대기중이라는 사유를 댔다. 이에 여야는 다시 합의하기를, 오후에라도 민정수석을 출석시켜 현안에 대한 답변을 듣기로 했다. 애초 국정개입 의혹의 진원지가 민정수석실 소관 공직기강비서관실이었기 때문에 소관 수석비서관에게 이를 질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민정수석은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의아하게 여긴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었더니 "출석하지 않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서실장이 출석을 종용하자 "차라리 사퇴하겠다" 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 모든 과정은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작게는 직속 상관인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한 항명이자 국회의, 그것도 여야 합의의 요청을 거부한, 하극상이었다. 당장 운영위원장을 겸하는 여당 원내대표부터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비서실장에 물었고, 비서실장 역시 굳은 표정으로 강력히 책임을 묻겠다고 답했다. 다음날 민정수석은 경질되었으나 '파면' 내지는 '해임'이 아닌 '면직' 처리인 것을 두고도 일각에서 작은 반발이 있었다. 어쨌든 초유의 민정수석 항명사태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한 편의 코미디 같았던 일련의 속보 헤드라인을 보는 동안 엉뚱하게도 참여정부 당시 검찰의 항명이 떠올랐다.

 

강금실/천정배 법무장관의 검찰과의 파열음은 역으로 이들이 얼마나 검찰과 유착되어 있지 않았는지, 검찰이 얼마나 자치권을 향유했는지를 반증한다. 이들이 강금실 장관의 검찰 인사에, 천정배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반기를 든 것은 누구도 그들의 내부 질서를 거스르는 것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조직논리의 반영이었다. 반면 이명박정부의 법무장관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같은 마찰을 보인 바 없으나 이는 법무부와 검찰이 완벽히 일체화되어 있기에 다름아니었다. 외견상 법무장관이 검찰을 성공적으로 장악한 것이나 어떤 의미에서는 검찰이 법무장관을, 나아가 정부 전체를 그들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떤 조직이 그 자체의 안위를 위해 돌기 시작하는 순간 그로부터 섬김받아야 할 모두는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참여정부 시절 해임건의안이 국회에 상정되자마자 사의를 표한 윤광웅 전 국방장관이 직접 밝힌 변은 "대의민주주의를 매우 존중하기 때문" 이었다. 립서비스였을지언정 이런 제스처를 취한 국무위원이 있었던 반면 차관급이 될까말까한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여야가 합의한 국회의 출석요구를 거부하고 행정부 내 직속 상급자의 지시마저 불복하며 사표를 내던진 일도 있다. 이 모든 에피소드가 결국 이들이 국민을 어떻게 섬기는지, 적어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의 바로미터이리라. 민정수석은 다만 대통령을 섬길 따름이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국민 다수가 선택했던 대통령을 해바라기하는 편이 바람직할까. 다만 확실한 것은 어느 쪽도 바람직한 공직자상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