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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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AMD의 CEO를 역임했거나 재임중인 사람은 다섯 명이 있습니다. 이 회사가 설립된 게 1969년이고 현 CEO인 리사 수 박사는 2014년 10월에 취임했으니, 45년여 동안 4명의 CEO를 배출한 건 꽤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평균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초대 CEO이자 창업자인 제리 샌더스 (Jerry Sanders) 박사가 무려 33년간 재임했었기 때문이죠. 샌더스의 뒤를 이은 CEO는 모토롤라 CEO 출신으로 샌더스가 은퇴 2년 전 직접 영입해 온 헥터 루이즈 (Hector Ruiz) 입니다. 루이즈가 샌더스와 바통터치한 2002년은 AMD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남은 임기 동안 AMD는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2002년의 큰 성공(K7, K8)은 90년대 후반에 이미 그 토대가 닦였던 것이니 이 양반의 재임기간 동안 AMD는 착실히 내리막길만 밟았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헥터 루이즈, AMD의 2대 CEO)

 

헥터 루이즈는 6년간 재임한 후 2008년 전격적으로 사임했는데, 직접적인 사유는 AMD가 그때까지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정설로 여겨집니다. 그 외에도 임기 말년 추진하던 팹의 분사 (훗날 글로벌파운드리가 되는) 에 관해 증권사 관계자에게 이를 사전 누설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오얏나무 밑에서 갓 고쳐쓰지 말라는 격언이 미국엔 없었는지 2009년 글로벌파운드리의 설립과 동시에 초대 회장에 취임하는 경악스런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AMD는 플래시메모리 분야를 후지쯔와의 합작 자회사로 분사하고 (Spansion, 2005) ATI를 인수했으며 (2006) 팹을 아부다비 정부와의 합작 자회사로 분사하는 등 (Globalfoundries, 2009) 사업영역에 있어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여담으로 루이즈의 사임 직후 AMD는 분기별 손실액이 10억 달러를 웃돌 만큼 큰 출혈을 겪고 있었는데 그 중 상당수(약 10억 달러)는 구 ATI 영업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창립 이래 첫 비 엔지니어 전문경영인 출신 CEO로써 R&D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회사의 명운이 걸렸던 바르셀로나 프로젝트(훗날 아제나가 됩니다)가 2년 가까이 지연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아무튼. 7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루이즈가 사임하고, 후임으로는 다시 엔지니어 경력자가 발탁되었는데 그가 바로 더크 메이어 (Dirk Meyer) 입니다. 그때까지 PC쪽에 편중되었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데이터센터와 서버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당시 막 태동하던 모바일 시장을 소홀히 여겼고, 심지어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모바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계획을 합리화하기도 했습니다 : "노트북이 더 많이 팔린다는 것이 PC 시장이 축소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훗날 모바일 시장에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사회로부터 책임을 추궁받고 사임하게 되었으니 그때가 2011년, CEO로서의 재임기간은 3년에 불과했습니다.

 

 

(더크 메이어, AMD의 3대 CEO)

 

AMD는 초대 CEO 이후 두 명의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CEO를 겪으며 (비 엔지니어, 엔지니어) 각각으로부터 아주 뼈저린 경험을 한 셈입니다. 엔지니어링을 소홀히 한 세일즈맨과 거시적인 안목이 없던 엔지니어. 여기서 AMD는 다시 한번 비저너리에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고 그 결과 영입된 것이 세계 최대 노트북 메이커인 레노버의 사장이었던 로리 리드 (Rory Read) 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양반 또한 비 엔지니어 출신으로 세일즈 전문가입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취임한 후 AMD의 첫 작품은 라노, 후속작은 불도저였습니다.

 

 

(로리 리드, AMD의 4대 CEO)

 

하지만 리드는 비전 제시자로서의 직무는 비교적 충실히 수행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안의 대부분이 리드 CEO 재임기간 중 입안된 것들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AMD의 수익 포트폴리오를 대폭 변경해 PC:비 PC 부문의 수익 비중이 8:2 정도이던 것을 5: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입니다. '비 PC' 부문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었고 이를 위해 리드는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IBM 반도체 R&D 센터장을 거쳐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의 CTO를 맡고 있던 저명한 엔지니어를 발탁하게 됩니다. 이후는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AMD가 임베디드, 세미커스텀 분야의 역량을 강화해 현재는 오히려 수익의 과반수 -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것이, PC 부문이 적자를 내고 비 PC 부문이 흑자를 내 메꿔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가 '비 PC'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쨌든. 리드 역시 3년간 재임한 후 사의를 표했고 이에 AMD 이사회는 다시 엔지니어 출신 CEO를 세울 결심을 하게 되는데 바로 리드가 취임 첫해 스카웃한 그의 러닝메이트, 리사 수 박사입니다. 사실 로리 리드를 발탁할 때부터 이사회가 훗날 리사 수를 CEO로 세울 것을 염두에 두고 리드에게 과도기 CEO로써 경영 정상화를 맡겼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만큼 리사 수는 영입 당시부터 AMD의 확고한 '넘버 투' 로서 위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평시에는 없던 COO라는 직책을 신설해 리사 수에게 맡긴 것이 한가지 예입니다. 지난 달로써 리사 수가 로리 리드의 조력 없이 단독으로 CEO직을 수행한 지 정확히 일년이 되는데 일단 언론에서는 CEO로서 큰 과오 없이 회사를 이끌어 온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지난 1년간은 로리 리드가 추진했던 구조조정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리사 수의 색채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리사 수, AMD의 5대 / 현 CEO)

 

아마 리사 수 체제의 진정한 평가는 내년 Zen과 K12, Arctic Islands가 출시되고 난 후에야 이뤄질 수 있겠죠. 마침 AMD의 엔지니어링 부문에서는 (대외적으로 요란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꽤나 의미심장한 개편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짐 켈러의 퇴사와 CPU 연구개발 조직의 관할 변경,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의 창설 등이 그 예입니다. 리사 수 박사 본인이 오랜 경력의 엔지니어로써 이러한 결정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 이들은 Zen, K12, 라데온 400 시리즈의 흥망에 직결되어 있는 조직들이고, 다시 말하자면 리사 수의 목이 달려 있는 부문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파운드리 분사 이래 가장 큰 '딜'인 '백엔드 프로세싱' 부문의 분사를 성사시키기도 했는데, 정확히 10년 전 AMD의 플래시메모리 부문을 가져갔던 후지쯔에게 다시 한번 일부를 떼어주며 37억 달러를 받는 계약이 불과 몇주 전 체결되었습니다.

 

초대 CEO 제리 샌더스로부터 AMD는 엔지니어-비 엔지니어-엔지니어-비 엔지니어-엔지니어로 차례로 교대되는 경력의 CEO를 맞이해 왔습니다. AMD판 틱톡이랄까요. AMD에게 있어 내년 한 해의 흥망은 Zen과 라데온 400 시리즈의 흥망으로 단칼에 결정지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회사 역사상 세번째 엔지니어 출신 CEO인 리사 수 박사가 제2의 제리 샌더스가 될지, 제2의 더크 메이어가 될지가 내년 단 한 해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녀의 전임자이자 두번째 비 엔지니어 CEO였던 로리 리드가  그나마 헥터 루이즈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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