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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 & Column/vga_lec_col

크파, SLI, VR의 삼각관계와 "라데온 Gemini" 의 운명

Translator : Daeguen Lee

(※ 이 글은 AnandTech의 원문 (링크) 을 번역한 것입니다.)




AFR과 VR의 상관관계, 그리고 Gemini의 운명



오늘은 좀 색다르게 서문을 열어 보자. 지난 10월 우리는 첫 DX12 게임인 Ashes of Singularity 리뷰를 통해 현행 SLI, 크로스파이어, 교대 프레임 렌더링 (AFR : Alternate Frame Rendering) 기술이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를 짚어본 바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올해 안에 AMD가 듀얼 피지 그래픽카드를 출시하고, 이를 계기로 더 심화된 분석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며칠 전 AMD는 듀얼 피지 그래픽카드의 출시를 2016년 초로 연기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래도 희소식이라면, 비록 주인공은 없으나 지금이야말로 AMD의 VR 중시 전략과 AFR 사이의 상관관계를 재조명할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주 : AFR는 SLI, 크로스파이어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이다.)


하지만, 어쨌든 먼저 해야 할 말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앞서 짤막하게 언급했듯 AMD의 듀얼 피지 그래픽카드는 내년 초로 연기되었다. 이 제품은 쌍둥이자리 (Gemini) 라는 코드네임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6월 피지 칩셋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 이미 그 등장이 예고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Fury X, Fury, 그리고 Nano 3종의 피지 기반 그래픽카드가 출시되었으며 Gemini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 피지 기반 그래픽카드가 될 예정이었다. Gemini의 샘플 자체는 6월에도 이미 실존했던 것으로 여겨졌기에 연내 출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2015년이 단 8일 남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떠한 Gemini의 소식도 공식적으로 듣지 못했다. AMD나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은 이미 출시된 카드들에 전념하는 모양새를 취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비로소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은 출시일자가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앞서 몇주 전, 겨울이 성큼 다가서는 것과 동시에 필자는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에 Gemini의 향방에 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이에 대한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의 답변에 따르면 그들은 VR 생태계과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Gemini의 출시일정을 조정했다고 한다.


"Fiji Gemini의 출시일정은 소비자용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HMD) 장비가 출시되는 것에 연동될 계획이었다. 지난 6월까지만 하더라도 HMD 장비의 출시일정은 2015년 연말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VR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시장에 확산되는 것이 늦어지면서 지금으로서는 2016년 2분기 초반으로 조정된 상황이다. 최적의 VR 경험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Fiji Gemini의 출시 시점 역시 그에 발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신비롭게도, 고대하던 제품의 출시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놓이기는 처음이었다. 바로 AFR의 현 위치와 VR과의 상관관계에 관해 재조명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오늘은 이에 관해 다루도록 한다.



Gemini의 출시 순연에 관한 토픽에서 잠시 벗어나 내부적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필자는 여전히 "이번 달, 혹은 다음 달 중에는 Gemini가 출시될거야" 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당연히 다가올 신제품의 리뷰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더랬다. 대조군으로 어떤 그래픽카드를 섭외할 것이며 어떤 게임을 테스트하고, 세부 테스트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멀티 GPU 구성을 테스트한다는 것은 제대로 성능을 검증해내기 위해 훨씬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단순히 절대적인 성능뿐 아니라 멀티 GPU 효율, 프레임 유지율 등 역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다. 이러한 준비를 수행하며 필자는 현행 멀티 GPU 구성의 작동방식인 AFR에 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간단히 말해 비교적 최신 게임들에서 AFR 지원은 아주 엉망인 수준이다. 지난 10년 이래 등장했던 게임들 중 요새 나오는 것들만큼 멀티 GPU 지원이 최악인 경우가 없었다. (중략) 아래 표를 보면 명확해진다.


파국으로 치닫는 멀티 GPU와 AFR의 현 상황



7종의 최신 게임들 중 3개는 아예 멀티 GPU를 지원하지 않고 있으며, 지원하는 4개 중에서도 2개는 프레임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다. 결국 2015년의 신작 게임들 중에서는 콜옵 블랙옵스 3과 스타워즈 배틀프론트만이 멀티 GPU를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프레임 상한이라는 것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아시다시피 벤치마크 용도에 있어 이들은 매우 쓸모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이 그들의 돈으로 여러 장의 그래픽카드를 달아 높은 프레임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봉쇄해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오늘날 G-Sync나 Freesync 같은 기술이 적용된 모니터가 많이 등장해 있고 이들을 통해 매우 부드러운 가변 프레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임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불행하게도, 여러분이 이들 게임의 프레임 상한을 제거하더라도 (폴아웃 4나 메탈 기어 솔리드 5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게임을 매끄럽게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메기솔5의 경우 수류탄 효과가 이상해지는 단점이 있으며 폴아웃 4는 아예 게임 진행속도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멀티 GPU 사용자들은 그들의 두번째 GPU를 무용지물로 방치하거나 불완전한 형태의 게임을 즐기는 것 중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차라리 양반일지도 모른다. 정말 최악인 것은 AFR을 아예 지원하지 않는 게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매 해, 매 시기마다 멀티 GPU를 잘 지원하지 않는 게임이 있어 온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이토록 많은 비율의 대작 게임들이 형편없는 지원으로 출시된 전례는 적어도 필자의 기억 속에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오늘날의 게임 엔진들이 '템포럴 리프로젝션' 기술을 사용하는 빈도가 잦아지는 데 있다. 여러 첨단 시각적 효과를 위해 사용되는 템포럴 리프로젝션의 핵심은 (현재 표시되는 것 말고) 이전 일정 시간 동안의 프레임이 연산에 사용되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AFR은 하나의 GPU가 n번째 프레임을 연산했다면 n-1, n+1번째 프레임을 다른 GPU가 교대로 맡는 방식이기에 템포럴 리프로젝션과 양립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을 프레임 상호의존성(frame interdependency)이라고 하며, 프레임 상호의존성이 야기하는 문제는 최근 몇년간 점증해 오는 추세이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AFR이 적용되도록 갈려들어가고 있지만 (특히 드라이버 레벨에서)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동기화에 있는데 (주 : 예컨대 양 GPU가 템포럴 리프로젝션을 위해 연산해야 하는 프레임 수를 동일하게 맞추고, 매 프레임마다 AFR을 적용하는 대신 3~5프레임마다 양 GPU가 교대로 연산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아무래도 두번째 GPU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능향상폭을 깎아먹는 단점이 있다. (중략)


문제는, 이런 경향이 적어도 단시일 내에 개선될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개발자들이 AFR에 친화적이지 않은 기법을 활용하는 사례는 증가일로에 있으며, 콘솔과 PC를 동시에 겨냥한 멀티플랫폼 게임이 늘어가는 추세 역시 불리한 징조이다. PC 유저는 전체 게이머 중 소수일 뿐이고 그 중에서도 멀티 GPU 유저는 특히 소수집단이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 AFR은 투입대비 산출이 도저히 맞지 않는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AFR에 희망은 있다. DX12의 '익스플리싯 멀티어댑터 모드' (Explicit Multiadapter Mode) 는 개발자가 직접 특정 GPU에 어떤 작업을 할당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명료한 재량권을 부여한다. 다만 DX12를 적용한 게임이 등장하려면 아직 많은 시일이 남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예컨대 첫 DX12 게임이 되리라 여겨졌던 Fable Legends는 금년 중에는 출시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얼마간은 현행 DX11 체제 하에서 현상유지가 되고 있을 수밖에 없다. 2015년 연말이야말로 AFR과 관련된 어떤 것이든 새로 등장하기에는 최악의 타이밍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가상현실 (VR) : 멀티 GPU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돌파구


그렇다면, 이제 오늘의 두번째 논점으로 넘어가보자. 멀티 GPU 기술이 오늘날 한계에 다다른 이상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주지했다시피 AFR은 프레임 상호의존성 문제로 인해 갈수록 효용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한 이상 앞으로 멀티 GPU 효율이 높아지려면 이러한 상호의존성이 적은 환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마침 오늘날 스테레오스코픽 VR이 구현되는 방식이 이러한 문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스테레오스코픽 VR은 똑같은 장면을 양 눈에 보여주기 위해 두 번 연산하게 된다. 엄밀히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카메라의 위치가 양 눈의 거리만큼 살짝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중복 연산의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수많은 최적화가 행해지고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종국적으로는 거의 똑같은 연산을 두번 반복하는것으로 수렴하게 된다.



멀티 GPU 환경을 전제한다면 이러한 스테레오스코픽 VR이야말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왜냐면 양 눈에 보여지는 프레임은 (동일한 시점을 전제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선후 문제에 의한) 상호의존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쪽 눈에 보이는 화면과 다른쪽 눈에 보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이는 곧 두 개의 GPU가 각각 한 눈에 보여지는 영상을 도맡아 처리하면 된다는 뜻이다. 각 눈에 보여지는 화면은 하나의 GPU만이 담당하기에 템포럴 리프로젝션 떡칠이 되었어도, 상호의존성이 있더라도 아무 성능 저하가 없다.


또한, VR은 사용자가 인식하는 해상도의 거의 두 배를 처리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레이턴시를 극소화해야 하는 고충이 있기에 이미지 품질을 어지간히 낮추고 싶지 않다면 대단히 고사양의 시스템을 갖춰야만 한다. 예컨대 오큘러스 리프트의 권장사양은 라데온 R9 290 또는 지포스 GTX 970이고, 이보다 높은 성능을 원한다면 사양을 더 올릴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점이 VR이야말로 멀티 GPU가 앞으로 나아갈 길임을 시사한다. 성능에 매우 목말라 있는 분야인데다 연산특성 자체도 멀티 GPU에 대단히 친화적이다.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과 엔비디아는 당연히 이러한 사실에 진작부터 주목해 왔으며, 이에 대응하는 '어피니티 멀티 GPU' (크로스파이어의 확장) 및 'VR-SLI' (SLI의 확장) 기술을 개발해 오고 있었다.


Gemini : 현존하는 그래픽카드를 압도할 단 하나의 러닝메이트, VR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의 Gemini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들은 애초 시작 단계에서부터 Gemini를 VR 특화 그래픽카드로 만들어왔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때마침 (피지가 공개되기 한달 전인) 5월 경부터 오큘러스 리프트가 내년 1분기 중 그들의 VR 헤드셋을 출시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보다도 훨씬 전인 지난 3월에 이미 AMD는 그들만의 '리퀴드 VR' 기술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의 원래 계획이 다소 헝클어졌을지라도, Gemini를 VR과 러닝메이트로 짝짓기로 한 그들의 선택은 단연 현 시점에서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평가받을만 하다. 이 글의 거의 절반을 할애해 설명한 AFR 관련 문제들은 진작부터 멀티 GPU 그래픽카드에 점점 더 큰 핸디캡으로 작용해오고 있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Gemini를 그대로 출시했다간 그다지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리뷰어들의 평판에서든 세일즈의 측면에서든) 사그라져 버렸을 것이다. 언제나 멀티 GPU 구성을 원하는 사용자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여러 장의 단일 GPU 그래픽카드로든, 한 장의 멀티 GPU 그래픽카드로든) AFR과의 호환성 문제가 불거질수록 이 시장은 쪼그라들기 마련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으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 동시에 위험 요소로 남게 된 부분도 상존한다. Gemini의 운명을 타사의 손 (오큘러스, HTC 등) 에 반쯤 맡겨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양사 모두 리테일용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만큼 조만간 좋은 결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양사 모두 내년 1분기 중에는 소비자용 제품을 출시할 예정에 있다. (다만 1분기 말 혹은 2분기 초가 될수도 있다.) 이제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에 남은 과제는, 출시일정에 맞춰 얼마나 많은 수량을 단숨에 공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간만이 답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