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대근
연락처 : leedaeguen [at] kaist.ac.kr
(이 블로그의 CCL에 위배되는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얼마 전 소형(?) 공냉쿨러들인 써모랩 바다를 리뷰하며 짚고 넘어간 서론을 요약하자면, 능동적으로 열원을 "냉각" 시키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어떤 쿨링 방식을 채택하든 결국은 실온에 가깝게 열원의 열을 발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게다가 이런 방식의 공랭식 쿨러는 이미 시장에 등장한지 오래 되어 사실상 성능의 평준화가 이뤄졌단 내용이었습니다. 쿨러 업계의 입장에서는 섬뜩한 지적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바로 여기서 출발하여 소형 쿨러로써의 '바다'가 버티고 설 입지가 있음을 증명한 바 있는데, 이에 사용된 전제는 '성능상의 평준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수긍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대형 공랭식 쿨러로 이룩할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소형 쿨러의 저소음이라든지 높은 호환성 등의 비교우위를 부각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전제를 바꾸면 어떨까요. '현재의 기술로 쿨러의 성능을 더 높일 수 있다'?
분명, 현재의 공랭식 쿨러는 성능상의 포화에 다다른 상태로, 획기적인 구조상의 변경(예컨대 크기가 두세배 더 커진다든지) 없이는 축열 용량(흔히 Q_max로 표기하는 수치입니다)이나 방열 속도(열이 발산되는 속도를 의미합니다)를 개선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크기를 키우는 식의 구조 변경을 꾀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그렇잖아도 상대적으로 큰 크기(150~160mm에 달하는 높이, 120mm 팬을 사용한다는 점 등)로 몇몇 케이스와 호환되지 않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현재의 대형 공랭식 쿨러를 더 키워낼 경우 '대부분의 케이스와' 호환되지 않는, 다시 말해 '케이스 안에 집어넣지 않고 쓸' 매우 소수만을 타겟으로 삼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평준화된' 양식을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한계는 곧 공랭식의 한계라고 보아도 무방한데, 약 십여년 전 이러한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쿨러에 적용된 소자가 바로 '히트파이프' 라는 것입니다. 외견상 구리(또는 다른 금속) 재질의 원형 단면을 갖는 막대처럼 생긴 이것은, 그러나 금속재의 외관과는 달리 그 내부는 무수한 수의 모세관과 모세관을 채우고 있는 열전도율이 매우 높은 유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체는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부피가 팽창하여 밀도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차가운' 유체의 위로 올라가게 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류의 원리를 이용해 히트파이프는 열원(CPU)에서 데워진 유체를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게 하여, 열원과 실온 사이의 열 교환을 도와 결과적으로 열원의 열을 발산하도록 돕는 것인데, 이는 과거 "통" 금속재질 쿨러에 비해 우수한 열전도율과 공간 설계(히트파이프를 사용하면 바람의 방향을 보다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여력을 갖춰 불과 몇년 사이에 공랭식 쿨러의 대세를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불과 1~2년 전.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등장한 '포터블 수냉식 쿨러'는 그 원리만 놓고 보면(실은, 수냉식이란 방식 자체도) 히트파이프가 채택한 방식을 보다 거시적인 차원으로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데워지고 식기를 반복하며 순환하는 물(히트파이프 내부의 유체), 물이 흐르는 통로(모세관), 물을 순환시키는 동력(유체의 대류 및 삼투압) - 이러한 대응관계를 성립시키고 보면 보다 직관적으로 수냉식 쿨러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1) 물이 얼마나 빨리 '식는지' 여부와 2) 물이 얼마나 천천히 '데워지는지' 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번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대체로 (수냉식 쿨러에서 열교환기 역할을 하는) 라디에이터가 큰 방열면적을 가질 것과 높은 풍량/풍압의 팬을 장착하고 있을 조건이 주어집니다. 반면 2번 조건은 1번과 상반되는 요구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온도가 빨리 오르거나 내리는 것은 칼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1번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어진 조건을 깨지 않으면서 2번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유체의 부피를 늘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조건들로 인해 수냉식 쿨러가 '포터블' 해지는 데에 많은 제약이 가해지게 됩니다.
포터블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포터블 쿨러는 시스템 내부에 장착 가능해야 하며, 대체로 하나의 킷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커스텀 수냉의 경우라면 케이스 밖에 무진장 큰 라디에이터를 설치한다든지 / 매우 긴 수로를 구성해 굉장히 많은 양의 물로 냉각을 시키는 것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수냉식 쿨러가 '포터블' 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라디에이터의 크기, 그리고 수로의 총 연장 길이(=유체의 양)에서 일정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폼팩터라는 것이 정해진 이상 수로의 길이를 무한정 늘리는 것 또한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결국은 어떻게 하면 라디에이터의 성능을 높일 것인가의 문제라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헥헥... 이제야 본론이...)
그동안의 포터블 수냉식 쿨러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라디에이터 구성으로 그 면적과 부피에 비례해 좋은 성능을 내 왔다면, 오늘 소개할 잘만의 RESERATOR 3 MAX는 전혀 새로운 모양의 라디에이터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더 넓은 방열면적을 갖게 해, 결과적으로 기존의 '1열 라디에이터' 크기에 불과한 구성으로 최상급의 성능을 꾀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론이 무척 길었으니, 거두절미하고 제품 외형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흔히 다른 잘만 쿨러 패키지도 그러하듯, 코팅 처리된 두꺼운 종이 상자가 제품을 감싸고 있습니다. 겉면에는 제품의 제원과 기본적인 구동 모습이 사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 박스를 열어 보면 쿨러 자체는 위와 같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한번 더 포장, 고정되어 있습니다. 라디에이터의 방열핀이 얇기 때문에 다른 접촉으로 인해 변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포장 구조를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포장 형태는 기존 CNPS 시리즈를 한번이라도 구입해 본 적이 있는 분이시라면 익숙하실 듯...
▲ 쿨러 풀샷. 이렇게 생겼습니다.
▲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CPU 쿨러로써 기능할것 같은 라디에이터.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열원과 접촉하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접촉부는 없으며, 수냉을 위한 유체와는 일종의 히트파이프 같은 구조 -금속재질의 관 속에 유체가 흐르는- 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수냉식의 특성상 유체가 볼륨감 있게 흘러야 하기에 모세관 형태의 히트파이프와는 내부적으로 전혀 다른 구조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러한 금속 유체 튜브가 라디에이터 내부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 위에 놓인 팬이 튜브를(그리고 그 안의 유체를) 실온에 가깝게 식혀 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 CPU와 직접 접하는 자켓. 방열면적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켓 내부에도 일정한 경로의 수로가 구성되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켓에서 나오는 전원선은 팬과는 관계가 없고, (유체를 흐르게 하는) 펌프에 전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 설치는 위와 같이. 직관적인 설명이 되길 바라며...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테스트에 사용된 대조군 및 시스템 사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 선정한 대조군은 (다나와 기준) 비슷한 가격대에 포진한 타사의 포터블 수냉식 쿨러 (안텍 920, 커세어 H80) 및 포터블 수냉식 쿨러 중 가장 저가형인 쿨러마스터 SEIDON 120V, 그리고 자사의 최상위급 공냉식 쿨러인 CNPS 10X Extreme 입니다. 각각 1) 같은 가격대에서의 동급끼리의 성능 비교, 2) 가장 저렴한 포터블 수냉식 쿨러와의 비교 평가, 3) 자사 기존 공랭식 쿨러와의 성능 비교를 목표로 집어넣게 되었으며, 테스트는 인텔 Core i7 4930K 프로세서를 각각 기본 클럭에서 / 4.5GHz로 오버클럭한 상태에서 진행하였습니다.
테스트는 Everest Stress Test를 돌려 더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는 지점에서의 각 코어온도 평균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어 더 이상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 지점에서의 각 코어온도 평균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편의상 온도 측정은 Everest에 의존했고,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의 실온은 24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테스트 결과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선 기본클럭 / 아이들 상태에서의 온도입니다. 인텔 기본쿨러와 비교했을 때 다른 대조군들의 성능은 거의 비슷비슷하게 평준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세하게나마 공랭식 쿨러인 CNPS 10X Extreme이 다른 대조군들보다 더 높은 온도를 보이고 있으나, 저 rpm 설정으로 맞추었을 땐 그 차이마저 별반 두드러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 풀로드 상태에선 약간 차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위급의 수냉식 쿨러들인 잘만 Reserator 3 Max, 커세어 H80, 안텍 920의 성능 차는 거의 소수점 이하 첫번째 자리까지 똑같은 편이며, 그나마 아주 저렴한 쿨러마스터 SEIDON 120V가 그들보다 1도 정도 차이로 떨어지는 결과일 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저렴한 제품이라도 포터블 수냉식 쿨러는 기존 공냉식 쿨러보다는 더 좋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일단 포터블 수냉이라는 방식을 공유하기만 한다면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보장하며 이 카테고리 안에서 돈을 더 지출하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일단 오버클럭시의 테스트 결과가 남았으니 한번 더 지켜보도록 합시다.
▲ 4.5GHz로 오버클럭한 뒤 아이들 상태에서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입니다. 아까와는 달리 -여전히 매우 작은 차이들이기는 하지만- 쿨러 간의 성능 차가 드러난 모습입니다.물론 포터블 수냉식 쿨러들끼리의 성능 차는 가장 좋은 성능을 보이는 Reserator 3 Max와 가장 낮은 성능인 SEIDON 120V를 비교했을 때조차 1도를 넘지 않고 있기는 합니다.
▲ 풀로드시의 온도입니다. 인텔 기본쿨러는 이 클럭에서 100도를 넘겨 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다른 대조군들과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는것 같은데, Reserator 3 Max는 최대 rpm 기준으로 기존 최상위급 공랭식 쿨러인 CNPS 10X Extreme보다 약 3.3도 낮은 온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포터블 수냉식 쿨러인 SEIDON 120V와 비교해서도 2.3도 가량 낮은 수치를 보여, 이 격차는 열원이 더 고발열체로 이행할수록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저 rpm / 고 rpm으로 나눠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보시다시피, 저 rpm 설정에서는 (인텔 기본쿨러를 제외하고) 대조군들 사이의 차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비슷비슷한 성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rpm이 오르자, 특히 CPU의 발열이 높아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요약하자면, 잘만 Reserator 3 Max는 대조군들 중 (그리고 동 가격대의 모든 쿨러로 비교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현실적으로 두배 이상의 가격 차이를 보이는 쿨러마스터 SEIDON 120V와 비교했을 때 큰 성능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점, 자사의 전세대 공랭식 쿨러인 CNPS 10X Extreme과 비교하더라도 그리 큰 차이로 자신만의 우위를 입증하지는 못했단 점이 다소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열원의 발열량이 늘수록 하위 제품군/공냉식 쿨러들과의 차이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예컨대 TDP 220W 이상의 AMD FX-9000 시리즈를 사용할 때라든지, 오늘 살펴본 4.5GHz보다 더 높은 클럭으로의 오버클럭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에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듯 합니다.
사실 첫머리에 언급했듯 공냉식의 -더 일반화하자면, 적극적으로 "냉각"을 시키는 방식이 아닌 열을 발산시켜 줄 뿐인 모든 쿨링 방식의- 한계에 근접한 오늘날 1~2도의 성능 차이를 이끌어내는 것은 실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대조군들과 작은 차이로나마 1위를 뺏기지 않고 모든 테스트에서 가장 좋은 성능을 보인 Reserator 3 Max는 그 자체로 최신 쿨링 기술의 집약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라디에이터가 무식하게 커지거나 하지 않는 이상...) 다만, 기술적인 성과를 잠시 제쳐두고 흔히 말하는 '가격 대비 성능'의 차원에서 이 제품을 바라보자면 높은 점수를 주기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5만원대에 불과한 SEIDON 120V와 비교하면 더더욱...)
결국, 판단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몫이 되겠네요. 저는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Notice & Personal Log >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GTX 670 초 간단 오버클럭 (0) | 2013.11.24 |
---|---|
바다의 진화: 2010 vs 2013 (4) | 2013.09.11 |
삼성램 × 불도저 퓨전! (12) | 2011.10.24 |
What the f**k... (5) | 2011.10.20 |
6790의 변신?! (하) (17) | 2011.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