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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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지방선거에서 여야당 어느 쪽도 뚜렷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예외적으로 정당의 영역이 아닌 교육감선거에서 민주진보 색채를 표방한 후보가 17개 광역지자체 중 무려 13곳에서 당선증을 거머쥐는 이변을 낳았다. 보수진영이 분열하고 진보진영이 대체로 단일화에 성공한 어부지리로만 치부하기엔 개별 '민주진보 교육감후보'의 득표력 또한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일례로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자가 얻어 낸 40%의 득표수는 역대 어느 서울교육감보다도 많은 것이다. 여권을 중심으로 불거지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이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끈을 고쳐 매는 선비를 연상케 하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 당장 야권에서는 이에 대해 "선거에 졌다고 선거를 없애려 하냐"는 직관적인 논리구조를 성립시켜 반여 정서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오비이락일지 모르겠으나 여권의 이러한 태도가 내게도 역시 괘씸히 보이는 것에 더해 하필 직선제 재검토라는 이슈를 꺼낸 그들의 타이밍 선정에 실망을 안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에게 패배를 안긴 선거를 없애겠다는 태도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의 것으로 교육감 직선제 자체가 과연 최선의 제도인지 고찰할 논의의 장을 미필적 고의로 걸어닫아 버린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방자치단체 집행부의 수많은 정무직 내지 별정직 중 오직 "교육감"이라는 직책만이 광역자치단체장과 분립하여 나란히 주민의 선택을 받는 것은 기형적인 구조라고밖에 할 수 없다. 다른 모든 장관을 두고 오직 교육부장관만이 대통령과 나란히 국민직선으로 선출되는 것과 같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는 교육감 직선을 둘러싼 "정치-탈정치", "종속-탈종속" 논쟁보다 훨씬 원초적인 부분에서, 행정을 "교육"과 "교육이 아닌 것"으로 칼질하듯 분리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문제가 된다. 예컨대 '학교정화구역'이란 정책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교육적인 측면과 경제산업적인 측면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 지방행정의 수장과 교육행정의 수장이 분립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는 교육감 직선제 도입 전후로 한 번도 공론화시켜 본 적이 없다. 분명 교육감 선출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문자 그대로 "논쟁"할 가치가 있는 주제이며, 그 의제는 비단 교육감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 "선출방식"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그 직의 존폐까지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교육감의 존치를 전제로 그 선임방법의 개선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교육감의 선임방식이 경쟁선거로 전환된 역사는 오히려 지방자치제도 자체보다도 오래되었다. 문교부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던 교육감은 91년 지방교육자치법의 제정으로 처음으로 교육위원회에서의 간선제를 도입했으며(교육위원은 최초 위촉 명예직으로 출발해 관내 학교운영위원으로 구성되는 선거인단의 간선제로 진화해 왔다) 98년 관내 학교별로 1인씩 선출하는 선거인단이 선출하도록 전환된 데 이어 2000년 관내 학교운영위원 전원을 선거인으로 하도록 선거인단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온 바 있다. 전면적인 주민직선으로 전환된 것은 2007년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의 산물이다. 현대사회에서 무엇보다 전문적인 선거기관으로써 기능하는 정당의 역할이 배제된 채 광역자치단체장과 동등한 거대권역의 선거를 치르는 기이한 모순은 처음 두 차례의 선거(법 개정 이후 최초의 보궐선거 및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소위 '깜깜이 투표'라는 부작용을 드러냈으며 심지어 추첨에 의해 결정되는 투표용지상의 성명 기재 순서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순번에 기재된 교육감후보가 대거 당선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다행히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별로 후보들의 성명이 랜덤하게 기재되도록 해 그와 같은 사태는 막았다.) 이런 부작용을 무릅쓰고 교육감 선출제도가 지속적으로 "민선"으로 이양되어 온 저변에는 교육자치법이 밝히는 대의가 있었는데, 바로 "교육의 자주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수호하는 것이다.


교육의 자주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이 과연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을 논외로 하고, 과연 이들이 "직선" 교육감을 통하여만 구현 가능한 목적인지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 진영에서 내세우는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광역자치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제, 둘째는 임명제 전환으로 러닝메이트제의 본질 역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의 교육감후보 지명'에 있는 만큼 사실상 '신임투표를 거치는 임명제'에 다름아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선거"라는 정치행위의 주체로써의 교육감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들 진영의 대의는 "교육의 탈정치화"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교육감을 반드시 주민의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부류의 슬로건은 앞서 교육자치법이 천명한 두 원칙에 더해 "교육의 탈종속화" 쯤 되겠다. 탈정치와 탈종속. 그렇다면 이들을 위시한 각 진영의 제도적 대안은, 이들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둘 중 어느 쪽도 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행정의 탈정치화를 위해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할 경우, 단지 교육감이 선거행위의 주체가 아니게 될 뿐 오히려 광역자치단체장과의 동조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폐지론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혹은 의도적으로 숨긴 본의일는지 모른다. 정치의 무소속 주연에서 (사실상) 정당 소속 조연으로 옮겨앉는 것이 탈정치의 이상적인 구현이라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믿는다. 반면 직선제가 탈종속화를 이뤄줄 것이란 믿음 역시 허상에 불과함이 수 차례의 교육감선거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결국 "자주"란 어떻게 교육감을 선출하는가로 대변되는 외형적 내지는 절차적 자주만이 아니라 (혹은, 그렇다기보다) 외려 교육감이 어떻게 집정하는가로 나타날 내용적 자주에 더 크게 의존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 내용적 자주를 결정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관내의 교육주체들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법한, 사문화된 제도가 하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립된 의회중심제 제2공화국은 모든 방면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의례적인 것으로 격하시켰으며 대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사권에서 특히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정부 수반인 국무총리를 사실상 국회가 선출하도록 한 것과 행정각부 장관에 대한 임면을 "확인"할 권한만이 남겨진 것 외에도 일견 급진적으로까지 보이는 조문을 사법부 구성에 도입한 바, 대법원장 및 대법관을 선거인단의 선거로 선출하게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제2공화국 성립 후 머지않아 5.16 정변이 발발,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당시 국회가 헌법의 시행을 위해 제정한 대법원장/대법관선거법에는 사법주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장치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예컨대 총원 9인(대법원장 포함)인 대법관 중 3인 이상을 법관이 아닌 자 중에서 선출하도록 못박은 점, 후보추천위원회에 비단 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장/검찰/변호사, 심지어 국민대표로써 민/참의원의원까지 폭넓게 망라한 점이라든지 아예 선거인단 구성에 있어 법관과 비법관을 50:50으로 안배한 점은 오히려 오늘날의 대법원/헌법재판소 구성보다도 내용면에서든 결과에서든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조문을 원용하여 학생/학부모/교원의 3자, 혹은 학생/학부모/교원/학교운영주체(재단)의 4자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을 구성해 교육감을 선출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2007년 이전 체제와 다른 점은 선거인단 구성에 다양한 교육주체가 (특히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으로, 단순 구색 갖추기를 넘어 선출절차에 있어 교육주체간의 폭넓은 컨센서스를 담보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예컨대 단순과반수에 더해 3자 혹은 4자의 각 교육주체를 대표하는 선거인 중에서 적어도 1명 이상의 지지를 당선에 필요한 특별정족수로 규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각급 학교에 학생회 및 학부모회가 조직되어 있어 학생/학부모선거인 선출 역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각 학교별로 학생회 대표/학부모회 대표 각 1인이 선거인으로 참여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간접선거제가 복잡다단한 교육주체의 이해관계를 폭넓게 수용하지 못한 데에는 그 구성이 지극히 협소한 계층(교직원 및 학부모 일부)을 대표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고, 이를 타파하고자 직선제를 도입했지만 외려 교육주체의 목소리보다 중앙정치에의 종속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덤으로 떠안게 되었단 점이다. 결국 선거권자의 중용(中庸)이 그 어떤 멋진 제도에 앞선다는 평범한 결론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