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물줄기

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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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온두라스의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 국민투표가 이 나라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헌법이 못박아 둔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려는 개헌안에 대해 야권은 물론 검찰, 법원, 선관위, 심지어 부통령을 포함한 여당 일부 정치인까지 결연히 반대 의지를 표명했고 (부통령은 아예 사표를 던지고 하야했다) 이에 대통령은 군 부대를 동원해 강제로 투표용지를 이송, 날 밝으면 바로 국민투표가 강행될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그렇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날 자정.

 

약 1개 중대급 병력이 대통령 관저를 봉쇄, 대통령을 인접국인 코스타리카로 '모셨고', 몇시간 뒤 군 당국은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자신들이 방금 대통령을 국외로 추방했으며 -당시 부통령직이 공석이었으므로- 헌법상 차순위의 대행권자인 국회의장이 대통령직을 대행할 것이고, 이 모든 조치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이뤄졌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쿠데타'의 배후가 놀랍게도 대법원이었음이 밝혀졌다. 대통령의 개헌 기도가 독재를 향한 수순이라 판단한 대법원장이 이날 밤 군대에 대통령의 축출을 지시한 것이다.

 

외견상 깔끔하게 마무리된 이날의 '쿠데타'는 이후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대다수는 대통령의 개헌 기도가 그를 물러나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찬성 59% vs 반대 41%) 대통령 자체에 대한 지지율은 그 반대에 가까웠던 것이다(지지 45% / 반대 26% / 중립 22%). 급기야 2011년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는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당시 대통령의 축출이 위법했으며, 뒤이어 집권한 -당시 국회의장으로써 취임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부의 합헌성 역시 부정해 "위헌"이자 "불법"인 것으로 규정하며(한 마디로 "괴뢰정부"가 되었다) 끝을 맺었다. 더불어 당시 분연한 사퇴로 반(反)독재의 아이콘이 되었던 당시의 부통령은 이후 이 나라의 리버럴리스트 진영을 대표해 대선에 출마했으나 뿌리 깊은 보수파에 패배함으로써 '2009년 쿠데타'의 마지막 한 장까지 역사 속으로 흘러갔다.

 

역사에 인격이 있다면, 자신의 흐름을 바꿔 보려 전전긍긍한 몇몇의 시도가 얼마나 가소롭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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