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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 & Column/ict_lec_col

조류와 포유류의 폐 구조 : 단일방향 공기 흐름이 가지는 이점

Author : Jin Hyeop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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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맥 프로의 쿨링 시스템과 디자인에 관하여’와 연계되는 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알려진 에베레스트 산, 최근에는 루트가 개발되고 여러 기술의 발달 등으로 등정이 예전보다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산악인들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것은 자명합니다. 에베레스트 정복이 힘든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주요한 이유는 고도가 높아질 수록 희박해지는 공기입니다. 잘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 해발 3000m 정도에만 가도 낮은 산소분압으로 인한 고산병으로 고생하기 일쑤이며, 잘 훈련된 전문 산악인들도 종종 고산병을 앓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는 산소통 없이는 한발짝 한발짝 떼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서 비행을 하는 새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에도 비행이란 행위는 걷는 행위에 비해 훨씬 많은 산소를 소모하는 일임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새들은 이런 고도에서도 호흡에 별 문제 없이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건 바로 호흡기 자체의 구조적 차이 때문입니다. 포유류의 경우 폐 내에서의 공기 흐름이 바뀝니다. 들숨일 때는 공기가 외부에서 폐로 유입되고, 날숨일 때는 폐에서 외부로 공기가 유출되지요. 폐가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정량 이상의 공기가 폐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폐포끼리 달라붙어 숨을 쉬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테니까 말이죠. 즉, 포유류의 폐에는 최대 날숨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의 잔기량이 남아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생각해 봅시다. 폐는 외부에서 산소를 받아 혈액으로 확산시키고, 혈액의 이산화탄소 등을 외부로 확산시킵니다. 결국 폐 안에 존재하는 잔기량은 외부 공기에 비해 산소 농도는 낮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높은 공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들숨이 들어왔을 때 들숨과 잔기량이 혼합되게 되고, 실제로 기체교환이 일어나는 공기는 외부에서 온 신선한 공기가 아니라 잔기량과 섞인 공기가 됩니다. 이것이 포유류의 폐가 가지는 구조적 한계입니다. 



(이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으로 우리가 마신 공기가 기체교환면에 도달했을 때 이미 산소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산소농도 수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반면 조류의 호흡기는 우리의 폐와는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조류의 호흡기는 들숨과 날숨 상태 모두 기체교환면에서 한 방향으로만 공기가 흐르게 됩니다. 조류는 몸 속에 기낭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기낭은 조류의 밀도를 낮춰주는 역할과 더불어 조류의 독특한 호흡 방식이 가능하도록 해 줍니다. 위 그림에서 A는 들숨 상태를, B는 날숨 상태를 나타냅니다. 들숨 상태에서는 각 기낭들이 모두 이완하게 됩니다. 그 결과 들이마신 공기는 기관을 따라 뒤쪽에 위치한 기낭으로 흘러갑니다. 이 때 기존에 기체교환면에 존재하던 공기는 앞쪽에 위치한 기낭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반대로 날숨 때에는 각 기낭들이 수축하게 되면서 뒷쪽 기낭에 있던 공기는 기체교환면을 통해 흘러가고, 앞쪽 기낭에 있던 공기는 기관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두 상황에서 모두 기체 교환면은 흐르는 공기로 채워져 있으며, 흐르는 방향은 뒤에서 앞 단일 방향입니다. 이 방식이 가지는 장점을 좀 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서 들숨으로 들어온 공기가 배출되기까지 어떤 경로를 따라 가는지를 추적해 봅시다. 처음 들숨으로 들어온 공기는 공기교환면을 거치지 않고 바로 후방에 위치한 기낭으로 이동합니다. 이후 날숨때 이 공기는 뒷쪽 기낭에서 빠져나와 공기 교환면을 흘러갑니다. 두 번째 들숨 때 이 공기는 앞쪽의 기낭으로 이동하고 두 번째 날숨 때 비로소 몸 밖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조류의 방식에서는 기체교환을 마친 공기와 외부에서 들어온 공기가 철저히 격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앞쪽 기낭/뒷쪽 기낭) 이런 격리는 기체교환면에 도달하는 공기가 외부의 산소를 손실 없이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단일방향으로의 기체 흐름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잔기량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구조입니다. (이 외에도 단일방향 흐름은 ‘대향류교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라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분은 이 페이지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눈치채셨겠지만, 기존의 공냉 쿨링 방식은 포유류의 방식에 가깝고 맥 프로의 방식은 조류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호흡기에서의 기체 교환은 시스템에서의 열 교환에 해당하고, 포유류의 잔기량이 제가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죽은 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존의 공냉 쿨링 방식에서 각 부품은 케이스 내부 공간의 공기를 빨아들여 자신의 열을 식히고 케이스 내로 방출합니다. 케이스 내부 공간은 일종의 폐처럼 작동하는데, 케이스에 달려있는 환기용 팬과 통기 구멍을 통해 순환하는 공기가 들숨, 날숨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적했듯이 기존의 공냉 쿨링 방식에서는 케이스 전체를 훑어 내릴 수 있는 공기 흐름의 생성이 어렵고, 거기서 발생하게 되는 죽은 공간이 잔기량처럼 작동하여 쿨링 효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반대로 맥 프로의 경우 기체교환면에 해당하는 통합 열처리 코어와 만나는 공기 흐름은 단일 방향이고, 어떤 공기도 내부에 잔류하지 않고 빠져나갑니다.


애플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조류와 포유류의 호흡기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겠지만(얻었을 수도…), 적어도 이런 방식의 생각 자체가 진화적 과정을 통해 이미 생물에 구현되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한 인간이 생물의 가장 발전된 모습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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