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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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에밀레종 이야기.


아이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 "말을 함부로 하지 말자" 정도나 교훈이 될까말까한 이 이야기는

대체 왜, 그리도 오랜 시간 동안, 구전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시주할 것이 없으니 내 딸이라도 데려가라'

'스님은 그 아이를 데려갔다'


담백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무감동하려야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갈등이 숨쉬고 있다.

세상 엄마들 중 누가 '시주할 게 없으니 딸을 데려가라' 는 말을 저리 깔끔하게 할 수 있겠으며

외력에 의한 모녀의 생이별을 묘사하기에 '아이를 데려갔다' 는 명료한 문장은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에 얽혀 있었을지 모를 뒷이야기를 나름의 상상으로 재구성해 보려 한다.

 


1.

 

서기 527년, 신라.


왕권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던 족벌 세력을 측근 이차돈의 피살을 빌미로 분쇄하는 데 성공한 법흥왕은

그 여세를 몰아 생전 이차돈이 설파하고 다니던 불교의 헤게모니 안에 신라를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국교로써 불교는 고대로부터의 토속신앙과 경쟁하며 이를 극복하는 한편, 당시까지 고대국가의 범주에 속하던 신라의

사상과 제도를 통합하며 당대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 체제인 왕으로의 중앙집권화를 구현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와 함께 왕가 자체의 신성성을 불교사상에서 찾고자 하는 공작은 '불교왕명' 에 이르렀는데,

예컨대 진평왕과 그 왕비는 각각 석가모니의 양친의 이름을 따 '백정' 과 '마야' 로 불렸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딸인 선덕여왕에게도 '싯다르타' 라는 이름이 붙여질 뻔 했다는 사실은, 그렇기에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다.


불교왕명은 왕권과 신권의 결합을 의미했다.


인류 역사상 그렇지 않은 때가 드물었지만, 특히 전근대사회에서 세속권력을 등에 업은 종교권력의 위상은 막강 그 자체였다.

특히 정권 차원의 가호를 받는 승려계급의 권위란 오늘날 영화 속 '정부 요원'의 그것과 견주기에 과연 부족한 것이었을까.

여기서부터 에밀레종 이야기를 다시 써 보자.


국가정보원 요원이 당신 집에 찾아와 '무엇이든 바치라' 며 가난한 당신을 볶아 댔을 것이다.

당신은 요원의 자비어린 선처를 바라며 '제겐 이 딸아이밖에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이에 요원은, 배후의 권력은, 정권 차원의 프로젝트에 열외가 용인되는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본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것인 아이를 빼앗음으로써 만인에게 보이는 공포의 본.


'시주하지 않으면 네 모든 것을 빼앗겠다'

'불교에 귀의하지 않으면 네 모든 것을 빼앗겠다'

'왕에 충성하지 않으면 네 모든 것을 빼앗겠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한가지 의문은, 왜 굳이 빼앗아 간 아이를 종을 만드는 도가니에 던졌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1.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콜라보 프로젝트인 신성한 종의 제작에 이물질을 섞는 게 가능한 일인가.

2.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조그만 아이를 종에 보태는 것보단 차라리 노예삼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즉, 백성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아이를 뺏어오는 것까지는 충분히 '합리적인' 행동이었지만,

그 아이를 쇳물이 끓는 도가니에 던져넣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이 이야기는 어떤 '의도' 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2.


이쯤에서 이 이야기가 유포되었을 당대의 상황을 가정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야 지금 여기서, 천년간 풍화를 거친 이야기를 마치 전설을 대하듯 담백하게 읊었지만,

바로 그 이야기가 내 이웃집 혹은 우리 가족 누군가에게라도 적용될 수 있었을 당대의 민중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서슬퍼런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기세에 눌려 차마 대놓고는 말할 수 없었겠지만,

민중의 마음 속에서 기성 권력에 대한 반감은 '이야기' 를 응결핵 삼아 나날이 커져갔을지 모른다.

그 이야기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른 된 계기는, 어쩌면, 정사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야사에조차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 어떤 '봉기' 가 아니었을까.


집권 세력에 대한 반감을 응집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반란군의 군가가 되고,

집권층이 그들의 영예를 높이기 위해 만든 거대한 종이 아름다운 소리를 -'에밀레', '엄마'- 낼 때마다

쿠데타 세력은, 속으로 '저 종을 위해 희생된 불쌍한 우리네 딸' 을 되새기며 증오를 키웠을 것이다.


쿠데타가 성공했든 못했든 한번 사람들의 입에 퍼진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는다.



3.

 

아마도 실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는 '원본' 의 분노와 증오를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퇴색하였으리라.

다만 '물 빠진' 버전으로 각색되었을지언정 이야기의 틀은 그대로 남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반란군이 증오했던 신라 왕조가 천년만에 무너지고,

그로부터 오백년 뒤엔 영원할 것 같던 불교 권력마저 무너지고 보니

이야기가 태동될 당시 새겼던 원한의 객체마저 증발한 셈이 되어 더욱 담백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는,

기득권에 항거하던 천년 전의 '삐라' 를 무덤덤히 기억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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