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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er DG

그들의 콤플렉스

Author : Daegue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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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로 모든 군사정변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민심을 받들어' 일어났다. 가까이는 5.16 군사정변으로부터 멀게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민심을 받든다는 그들이 집권에 성공하자마자 하는 일은 거꾸로 민심을 수렴하기에 가장 나쁜 제도들을 고안해내는 것이었다. 엘리트 계층을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시키는 것, 궁극적으로 대중의 의사와 상관 없이 통치할 수 있는 합법을 가장한 틀을 구축하는 것. 이 틀 위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잘 배운, 다시 말해 현존하는 질서에 순응하며 이를 확대/재생산할 이념적 근거를 내재화한 소위 '엘리트'와 이러한 질서를 창출해낸 주역들의 카르텔. 역사 속 어느 시점에서 이 카르텔의 주역은 군인이기도, 행정부 관료이기도, 법조인이기도 했지만 그 성격의 본질이 바뀐 적은 한번도 없었다. 카르텔의 다른 이름은 야합, 시간이 지나며 그 본질은 기득권이 된다.

 

대중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권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그들이 민심을 참칭하는 것까지 중단하지는 않는다. 외려 철권을 휘두르는 집권자일수록 실은 민심이 두렵다. 민심이 결집하지 못하게 막는 것, 그리하여 진정한 민심의 흐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들로썬 참칭할 뿐이던 '민심'의 허구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언제까지고 숨기는 것. 결국 이 모든 것의 발로는 '민심 콤플렉스'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민심 콤플렉스는 여러 증상으로 발현되는데 대증적인 분석보다 그 본질을 파고들자면 대중의 정치적 의사의 집합체로써의 민심이란 것에 '국가와 국민의',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기득권을 형성하는 카르텔'의 이익이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으리라는 의심을 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포퓰리즘'이라는 멸시적 레토릭의 진의가 드러난다. 그리고 지난 대선을 통해 표면화된 이들의 이런 의심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북한의 심리전에 휘말려 종북 대통령을 선출할지도 모른다."

 

물론 '종북 세력'의 집권이 국가와 국민의, 좀더 와닿는 어휘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제한적으로나마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에의 실질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입각한 절차로 '종북적'일 가능성이 있는 정부가 집권하는 것과, 민주적으로 성립된 정부가 '종북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집권 카르텔, 그 중 실제적인 통치에 있어 불가분의 존재들(예컨대 군대, 국정원, 행정부 관료 등)이 그 정부에 불충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자유민주주의에 더 위협적인지는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다. 결국 어떤 세력의 수권이 국가와 국민에 유리할지는 국민 다수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이 명령하는 바이다. 그게 못 미더우면 군대가, 엘리트가, 특정 계급이 독재하도록 헌법을 고치면 될 일이다. 마침 38도선 이북에 그러한 헌법이 실재하니 필요하다면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의심 내지는 선민사상 의 또다른 발현은 군대로 하여금 '외부의 적'이 아닌, 엄연한 국민 일부인 '종북 세력'을 적대시하게끔 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모든 군사정변이 민심을 참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끝은 군대가 총부리를 나라 안으로 돌림으로써 완성되었다. 결국, 어쩌면 국민 중 다수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수일지도 모르는, "애국 시민"들이 가진 반공 극우주의가 마치 국민 다수의 총의에 기초한 '민심'인 것으로 가정하고 그 여집합에 모두 '종북' 딱지를 붙이는 행태. 백번 양보해 '실체적인 종북 세력'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종북' 딱지는 이들에게 붙이는 것만으로 소진되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종북적인 생각과 언행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어쩌면 "애국 시민"들보다도 훨씬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찬동하는 리버럴리스트들에게까지 '종북' 딱지는 기어이 따라붙고야 마는 것이다. 이 만행을 누가 저지른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겠으나 하물며 그 주체가 군대여서야. 군대란 조직이 외적에 적대적인 슬로건을 내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의 일부를 그들의 적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과 북한의 주장에 동조할 자유에 동조하는 것의 차이점을 아는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군대가 진정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 중 특정한 컨셉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종북 세력'을 적대시한 군대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는 있는 것일까. 백번 양보해 설령 수뇌부가 그러할지라도, 아직 어리고 사고가 완성되지 않은 병사들까지 그 모호한 개념을 인지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 둘의 차이점을 가르치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 것일까. 소위 대적관 확립이라든지 안보의식 고양이라는 데 쓰이는 교육열의 십분의 일만큼이라도. 예비 시민인 어린 군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주입된 저런 구호들이 특정 정치세력에의 호불호를 그들의 무의식 속에 새기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이런 모호성이야말로 집권 카르텔이 의도한 바는 아닐까.


우리가 지금 당장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실은 몹시도 제한적인 것이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에 그 바운더리 -자유로움과 자유롭지 않은 경계, 민주적인 것과 더 이상 민주적이지 않은 어느 경계- 까지 나아갈 일이 거의 없기에 우리 대부분은 '제한된'이란 단어에 괄호를 쳐놓고도 별로 이상할 것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돈이 그렇고 건강이 그렇듯, 여느 '가치'가 그렇듯 잃기는 쉽지만 얻기는 어려운 것이 이들 가치이기도 하다. 몹시도 대단한 것 같지만 실은 종잇장보다도 얇고 연약한 것이 우리가 누리는 것의 마지노선인 것이다. 우리가 진정 38도선 이북의 이웃들보다 우월하다면,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그들과는 또다른 방향으로의 사상 통제가 아님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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